작년 6월 초 교통지옥 자카르타는 텅 비었다. 르바란 연휴를 맞아 수도 자카르타와 위성도시 3,000만 인구의 절반 이상이 귀향(무딕)하거나 여행을 떠나서다. '교통 체증 없는 자카르타는 천국'이라는 표어 아래 자카르타를 지키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5년 전부터 연휴 기간 자카르타의 텅 빈 거리에 연례행사처럼 상상력과 재미를 녹여낸 인증놀이를 이어갔다. 차가 사라진 도로에서 요리하고 식사하고 청소하고 목욕하고 게임하고 잠자고 캠핑하는 모습을 찍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는 식이다.
귀향 직전 곳곳에 환전상이 등장했다. 외환 거래가 아니라 5~10%의 수수료를 떼고 헌 돈을 새 돈으로 바꿔주는 이들이다. 현지인들은 우리나라 세뱃돈처럼 고향에 돌아가 친지와 아이들에게 빳빳한 새 돈을 선물(앙파우)한다. 가끔 위조지폐를 바꿔주는 상인이 있어 뉴스에 오른다. 보통 한 달치 월급이라 두둑한 르바란 보너스(THR)로 명절 선물을 사려는 사람들이 재래시장과 대형 몰을 가득 메웠다.
아랍어로 '이드 알피트르'라 부르는 르바란은 이슬람력 9월 한달 라마단 금식이 끝나고 10월 1일(올해는 5월 24일)부터 시작되는 인도네시아 최대 명절이다. 공식 휴일 이틀에 대체 휴가 포함 5일 정도지만 대개 열흘 이상 쉰다. 첫날엔 이슬람사원에 모여 합동 기도를 한다. 무딕 행렬이 끝없이 이어져 민족의 대이동이 벌어지고 가족과 친지가 조상의 산소를 찾아 성묘하는 등 우리나라 설 연휴와 빼쐈다.
그러나 올해 르바란(5월 24~25일)엔 인증 놀이도, 환전상도 없었다. THR을 받지 못하거나 아예 직장을 잃은 사람도 많았다. 세계적 전염병 대유행 시대는 2억7,000만 인구가 손꼽아 기다리던 명절마저 앗아갔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무딕을 막았고, 5명 이상 모이는 단체 행동이나 행사도 금지했다. 관행에 젖어 르바란 즈음 재래시장에 사람들이 몰려들기도 했지만 분위기는 예년만 못했다. 차량 짐칸에 숨어 몰래 무딕을 감행한 이들은 도중에 단속에 걸리거나 정작 고향에서 환대 받지 못했다. 기어이 무딕에 성공한 이들은 지난해 10분의 1도 안됐다.
이번 르바란을 어떻게 보냈는지 자카르타 보통 시민들에게 직접 물었다. 회사원 무사피라(25)씨는 대학 시절부터 한번도 거르지 않았던 무딕을 올해 처음 하지 못했다. 그의 고향은 수마트라섬 메단이다. 자카르타에서 비행기로 2시간30분, 자동차로는 바다 건너 이틀이 걸리는 곳이다. 그는 "올해는 안전을 위해 르바란 맞이 기도도 하숙집에서 혼자 했고, 고향에 있는 부모님은 영상 통화로 만났다"고 했다. "대신 친구들이 지난해와 달리 선물을 많이 해줘서 덜 외로웠다"고 덧붙였다.
통역사 파흐리(25)씨는 "가족 여행 계획을 취소하고 집에서 보냈다"라며 "사회적 거리 두기 방침에 따라 명절 인사도 아주 가까운 이웃에게만 했다"고 말했다. 회사원 클라우데아(24)씨는 "집 주변 이슬람사원에서 르바란 합동 기도회가 열렸지만 가지 않았다"라며 "대규모 사회제한조치(PSBB) 규정이 복잡하고 많아서 그냥 집에서 쉬었다"고 전했다.
다른 현지인들의 명절 풍경도 엇비슷했다. 무딕을 포기하는 대신 스마트폰 영상 통화나 인터넷 화상 모임을 통해 고향의 가족을 만났다. 20만명 규모의 동남아시아 최대 이슬람사원인 자카르타의 이스틱랄은 1978년 문을 연 이래 처음으로 합동 기도회를 열지 않았고 현재 보수 중이다. 아체 등 코로나19 환자가 적어 '녹색 지대'라 일컬어지는 지역에선 합동 기도회가 열리기도 했으나, 마스크 착용 및 발열 검사 등이 이뤄졌다는 게 현지인들이 한국일보에 전한 얘기다.
특히 올해는 피붙이를 주로 챙기던 예년과 달리 이웃이나 지인에게 주는 선물이 늘었다. 주로 간단한 음식이나 옷이다. 인도네시아 교민 이모(66)씨는 "알고 지내던 현지인이 이번에 고향에 못 갔다며 집에서 만든 현지 전통음식 른당(일종의 소고기 장조림)을 직접 가져왔다"고 했다. 회사원 푸트리(26)씨는 "가까운 사람끼리 선물을 주고 받는 게 올해 르바란에 유행이 됐다"고 말했다.
달라지지 않은 것도 있다. 가족과 친척, 이웃에게 지난 1년간 저지른 잘못을 사과하고, 상대방의 허물은 용서하는 르바란의 참뜻만큼은 무서운 전염병도 바꾸지 못했다. 안선근 국립이슬람대 교수는 "인도네시아에서 30년 넘게 살았지만 올해처럼 쓸쓸하고 초라한 르바란 명절은 처음"이라면서도 "대규모 종교 행사 등 형식보다 용서와 화해가 담긴 르바란의 진짜 의미를 오롯이 되새기며 검소와 절제를 실천하고 가까운 주변인들을 챙길 수 있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고 말했다. 세상이 아무리 험해도 사람들은 시나브로 길을 찾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