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2012년에 손 잡아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버틸 수 있었어요.”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대표인 한종선씨가 지난 달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꽃다발을 건네며 한 말이다. 형제복지원 사건을 비롯, 국가가 벌인 인권유린 사건들의 진상 규명을 위한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과거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직후였다. 진 의원은 19, 20대 국회 임기 8년간 과거사법 개정안 처리에 힘을 쏟았고, 최씨가 담백한 말로 절절한 고마움을 전한 것이다.
진 의원이 과거사 문제와 처음 연을 맺은 건 19대 총선 직후인 2012년 여름. 민주당 전신인 민주통합당 의원으로 갓 금배지를 단 진 의원의 눈에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한씨가 들어왔다. 한씨는 "형제복지원 진상을 규명하라”는 피켓을 든 채였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이렇다. 1975~1987년 형제복지원에선 ‘국민 선도’ 명목으로 국가의 비호 속에 고아, 장애인, 노숙인 등에 대한 불법 감금과 강제 노역, 구타, 성폭행 등 폭력이 벌어졌다. 알려진 사망자만 최소 513명이지만, 사법부는 주도자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내렸다. 잊혀졌던 비극은 생존자 한씨의 몸 던진 시위를 통해 겨우 세상에 알려졌다. 참상을 확인한 진 의원은 2013년 10월 과거사법 개정안을 냈다.
논의는 순탄치 않았다. 진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 골자는 2010년말 5년의 활동 기간을 마치고 해산한 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위)를 재가동해 형제복지원 사건,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사건 등의 진상을 규명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행정력 낭비” 등을 이유로 반대했고, 상임위에서 단 두 차례 논의된 후 19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진 의원은 22일 “복지원 사건이 일어난 부산 의원들마저 개정안에 적대적이었다”며 “‘초선 의원이 개정안을 내서 그런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고 했다.
20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진 의원은 2017년 2월 개정안을 다시 발의했다. 그 해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도 ‘2017년 법 개정→2018년 상반기 과거사위 재개’ 로드맵이 담겼다. 하지만 개정안 처리는 계속 밀렸다. 지난해 10월에야 자유한국당(통합당 전신)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국회 행정안전위를 통과해 법제사법위에 넘겨졌으나, 한국당이 ‘날치기’라고 반발하며 저지했다. 당시 진 의원은 여야 의원들에게 두 차례 편지를 보내 호소하는 등 공을 들였지만, 허사였다.
형제복지원의 또 다른 피해자인 최승우씨가 지난달 국회 의원회관 현관 지붕에 올라 고공농성에 나서고, 김무성 통합당 의원이 중재에 나서며 가까스로 개정안이 20대 국회를 통과했다. 진 의원은 “8년여의 희망고문이 끝났다”고 했다.
10년 만에 출범하는 2기 과거사위의 책임은 막중하다. 진 의원은 “(한국전쟁 발발 전후 ‘빨갱이’를 소탕한다며 무차별 민간인 학살을 자행한) 집단학살 사건의 피해자가 100만명이란 조사도 있는데, 1기 과거사위의 진상규명엔 한계가 있었다”며 “당시 기억을 가진 사람들 다수가 이미 돌아가셨거나 80~90대 고령”이라고 했다. 2기 과거사위가 활동할 향후 4년이 진상규명의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 그는 “그간 빨갱이나 좌익으로 낙인 찍힐까 봐 피해자들이 진상규명 신청에 소극적이었는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여러분 책임이 아니다’고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해자 배ㆍ보상 문제 논의도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한다는 게 진 의원 주장이다. 지금은 ‘국가 책임이 인정된다’는 진상규명 판단이 나오더라도 피해자들은 다시 개별적으로 국가를 상대로 민사소송 절차를 밟아야 한다. 진 의원은 “정부가 신속하고, 일괄적으로 구제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과거사위는 조사에 집중하고, 국회는 구체적인 배ㆍ보상 방식을 논의하는 투트랙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 한국일보의 ‘여의도 일터뷰’는 정쟁과 정치공학 그 너머, 여의도 1번지 국회 구석구석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일에 관한 인터뷰’, ‘일터에 관한 조망(View)’을 통해 한 발 가까이에서 들여다 본 ‘일하는 여의도’의 표정을 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