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타닐로 눈을 돌리는 마약 중독자가 눈에 띄게 늘고 있어요. 같은 아편계 마약인 헤로인 등은 구매비용이 크고 적발 위험도 높잖아요. 펜타닐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다 ‘의사 처방’이라는 합법성까지 갖춰 쉽게 구할 수 있거든요.”
최근 들어 ‘펜타닐 오ㆍ남용’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고 귀띔해 준 한 마약 전문가의 설명은 섬뜩했다. 펜타닐은 본래 디스크나 암 환자 등이 수술 후 겪는 통증을 줄이기 위해 사용하는 아편계 진통제다. 주로 패치 형태 제품으로 시중에 유통되는데, 마약 중독자들 사이에서 펜타닐의 환각 효과가 입소문을 타며 일종의 ‘대체 마약’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급증한다는 말이었다. 일부 중독자들이 ‘편법 처방’을 받은 뒤, 패치에 포함된 마약 성분을 흡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대표적인 마약성 진통제인 모르핀보다 약효가 100배나 강한 까닭에 ‘한번 손을 대기 시작하면 죽기 전엔 끊을 수 없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중독성이 심각하다.
이런 펜타닐에 빠져 버린 사람들에게 A의원은 ‘성지’와도 같다. 처방전을 쉽게 내 주는 건 물론, 사후 관리가 허술하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나 있기 때문이다. 한 펜타닐 중독자는 지난해 8월 A의원을 통해 이 약을 처음 접한 뒤, 올해 3월까지 주기적으로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펜타닐의 존재를 처음 알려준 지인도 A의원에서 처방전을 받았다고 했어요. 실제로 가 보니 하나도 어렵지 않았어요.” 정말로 펜타닐 처방을 받는 게 ‘식은 죽 먹기’인지 직접 확인해 보기로 했다.
지난달 7일 오전 기자는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A의원을 찾았다. 건물 2층에 있는 A의원 출입문에는 ‘365일ㆍ24시간 진료’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소문이 사실이라면, 마약을 찾는 이들이 언제든 펜타닐을 접할 수 있다는 의미다.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서자 20평 남짓한 공간에 접수 데스크와 3, 4명이 앉을 수 있는 대기용 소파가 놓여 있었다. 이른 시간이라 다른 환자는 없었다. 간호사 한 명, 의사 한 명이 기자를 맞았다.
“어떻게 오셨어요?” 방문 목적을 묻는 간호사의 질문에 “허리가 아파서 왔다”고 둘러댔다. 간호사는 신분증 제출을 요구했고, 이를 받자마자 복사했다.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하려면 의원 측에서 환자 인적 사항을 보관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땐 ‘허리가 아프다’라는 말만 했을 뿐인데 신분증부터 요구하다니 의아했다. 방문객이 요구하는 대로 기계적으로 환자들을 대하는 느낌이었다. ‘혹시 이곳의 주된 업무는 마약성 진통제 처방이 아닐까’라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었다.
접수 후 진료실에 들어가자 의사가 증상을 물어 왔다. “2년 전 운동을 하다가 허리를 다쳐 수술을 받았다”고 답하자 골절, 디스크 손상 여부 등에 대한 추가 질문이 이어졌다. “정확한 내용은 모르겠다”고 얼버무리면서 인터넷을 통해 얻은 간단한 요추 수술 관련 지식을 첨언했다. 의사는 수술 이야기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재차 “디스크 손상 아니냐”고 묻기만 했다. 기자는 “그런 것 같다. 그동안 펜타닐 패치를 붙여 왔었다”고 답했다. ‘본론’이 시작된 것이다.
놀랍게도 의사는 즉각 ‘용량’으로 화제를 전환했다. 여러 종류가 있는데, 주로 100㎍(마이크로그램)/h짜리 패치를 붙인다는 식이었다. 어느 정도 답변이 정해진 질문처럼 느껴졌다. 기자가 100㎍/h 패치를 붙여왔다고 답하자 의사는 곧바로 펜타닐 패치를 처방해 주겠다고 했다. 과거 수술기록이나 관련 진단서 등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통상 펜타닐을 처음 접하는 환자에게 25㎍/h짜리 패치를 처방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낯선 환자한테 아무런 확인 절차도 없이 상당히 강한 용량을 처방해 준 셈이다.
진료를 마치고 나오자 접수 데스크에 있던 간호사는 처방전을 주면서 펜타닐 패치를 구매할 수 있는 약국을 알려줬다. “마약성 진통제는 일반 약국에서 구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대학병원 근처까지 이동해야 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A의원이 알려 준 약국은 약 1㎞ 거리에 있는 B약국이었다. “그 근방에 다른 약국도 많이 있지만, 펜타닐 패치를 파는 곳은 B약국밖에 없어요.”
처방전을 손에 들고 A의원 출입문을 나섰다. 진료 접수 후 이때까지 걸린 시간은 7분이 채 되지 않았다. 의사 진료를 받은 시간도 고작 3분 남짓이었다. 모르핀보다 100배 강하다는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받는 데 투자한 건 결국 1만5,000원(진료비)과 7분(진료 시간), 이게 전부였다. 그야말로 일사천리, 당초 예상보다도 훨씬 더 간단했다. 소문은 사실이었다.
그래도 ‘구입’은 좀 까다롭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B약국으로 향했다. 처방전을 내자 창구 직원이 A의원 쪽에 전화를 걸었다. 처방 환자와 실제 구매자의 신분을 교차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그리고는 A의원과 마찬가지로 기자의 신분증을 복사해 갔다. 자리에 앉아 잠시 대기하자 약사가 펜타닐 패치와 함께 안내문을 건네줬다. 용법ㆍ용량에 대한 구두 설명은 없었다. 안내문에는 그저 “3일 동안 1매를 붙일 수 있다”는 문구만 쓰여 있었다.
이렇게 기자는 펜타닐 패치 10장이 들어 있는 제품을 손에 쥐는 데 ‘성공’했다. 비용은 17만2,520원.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필로폰 암거래 시세(0.5g당 30만~50만원)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수준이다. 게다가 어쨌든 합법적으로 샀으니 마약을 찾는 이들에겐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펜타닐 같은 마약성 진통제를 주변에서 마음만 먹으면 쉽게 구할 수 있게 되면서, 마약이 사실상 전 국민에게 통제 없이 유통될 가능성이 열렸다. 실제로 마약류 중독자의 직업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고, 연령도 어려지는 추세다. 마약이 시민들의 일상 속으로 파고들면서 보편화하는 현상이 가속화하는 셈이다.
대검찰청이 펴낸 ‘2019년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마약 수요와 공급은 모두 대폭 증가했다. 밀조ㆍ밀수ㆍ밀매 등 공급사범(4,225명)은 전년 대비 28.3% 늘어났고, 투약 사범(8,210명)의 증가율도 32.9%를 기록했다.
직업별ㆍ연령별 통계 역시 ‘마약의 보편화’ 흐름을 보여준다. 마약과 동떨어진 직업군으로 분류돼 온 일반 회사원이 큰 폭으로 증가한 게 단적인 예다. ‘넥타이 마약류사범’의 비중은 2016년 492명에서 2018년 543명으로 늘어나더니, 지난해에는 723명으로 증가했다. 의료업계 종사자도 2015년 51명에서 지난해엔 130명으로 2배 이상 늘어났다. 학생 마약류 사범 또한 2015년 139명에서 작년엔 241명을 기록했다. 표면적으로는 ‘소폭 상승’일 뿐이지만, 암수범죄(실제로는 발생했으나 수사기관 등에 적발되지 않아 공식 통계엔 집계되지 않은 범죄)인 마약 범죄의 특성을 감안하면 실제 범법자는 훨씬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마약을 접하는 연령대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 지난해 19세 미만 청소년 마약류사범은 239명으로, 전년(143명) 대비 67.1% 증가했다. 20대 마약류 사범 또한 3,521명으로 집계돼, 전년(2,118명)에 비해 66.2% 늘어났다.
아울러, 고학력자 비율도 증가 추세다. 대학 졸업자 비율은 △2016년 11.0% △2017년 13.0% △2018년 15.2% △지난해 16.6%로 나타났다. 요컨대 ‘마약은 저학력ㆍ특정 소수집단의 향락물’이라는 통념은 더는 사실이 아닌 것이다.
펜타닐에 중독됐다가 올해 3월부터 단약(斷藥ㆍ약을 끊는 것)에 들어간 강민영(가명ㆍ22)씨는 경험자로서 느낀 문제를 이렇게 표현했다. “의료업계의 마약성 진통제 관리가 너무 허술합니다.” 현재 의약품안심서비스(DUR)를 통해 특정인이 적정량 이상의 약을 처방받지 못하도록 관리하고 있음에도, 형식적인 절차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었다.
예컨대 다른 사람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써도 본인 대조를 꼼꼼히 하지 않고 마약성 진통제 처방을 해 주는 병원이 적지 않다는 게 강씨의 지적이다. 그는 “심지어 가짜 신분증을 내거나, 아예 제3자에게 환자 행세를 해 달라고 부탁해서 처방전을 받아내는 경우도 봤다”고 했다. 그 결과, 자신의 일터에서만 원래 한 명이었던 펜타닐 중독자가 순식간에 4명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 마약 관련 은어 몇 개만 입력해도 판매상과 직접 연결이 됩니다. 누구나 마약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구조예요. 여기에 마약성 진통제까지 아무나 구할 수 있는 현실을 그대로 놔두면 마약의 보편화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겁니다.” 마약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젊은 중독자의 섬뜩한 경고였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강력한 진통제로 평가받는 의료용 마약 펜타닐은 오ㆍ남용 시 건강에 매우 치명적이다. 한 번 손대면 양을 늘릴 수밖에 없어 죽음까지 각오해야 한다고 의료계는 경고하고 있다.
대검찰청이 발간한 ‘2019년 마약류 범죄백서’ 등에 따르면, 펜타닐은 가장 널리 알려진 마약성 진통제인 모르핀보다 100배 정도 강한 진통 효과를 갖고 있다. 헤로인과 비교해도 심신에 미치는 영향이 50배나 강력하다.
그러나 본래의 치료 목적이 아니라 마약 대체제로 쓰이면서 펜타닐의 치명적인 부작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내성(반복 사용으로 약효가 떨어지는 현상)과 의존성이 매우 빠르게 생겨 과다 복용의 위험이 있는데, 그에 따른 호흡 기능 저하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홍성진 여의도성모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펜타닐은 큰 수술을 받은 후 극심한 통증을 조절할 목적 또는 일반 진통제로는 조절이 안 되는 암(癌)성 통증 환자에게 제한적으로 사용되는 마약성 진통제”라며 “호흡을 억제하는 특징이 있어서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건 치명적”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갑자기 복용을 중단할 경우, 금단 증상이 너무 심하다는 게 문제다. 일단 손을 대기 시작하면 끊기가 무척이나 힘들다는 얘기다. 마약 중독자들의 치유ㆍ재활을 돕는 경기도 ‘다르크(DARCㆍDrug Addiction Rehabilitation Center)’의 임상현 센터장은 “의사한테 처방받은 펜타닐을 오ㆍ남용했던 20대 입소자가 있었는데, (약을 못 하니) 몸이 아프다면서 견디지 못하다가 결국 퇴소했다”고 전했다. 그는 “(말로만 듣던) 펜타닐 중독이 얼마나 무서운지 직접 목격한 셈”이라고 덧붙였다. 마약 중독 치료 전문가인 천영훈 인천참사랑병원 원장도 “복용량을 줄이기만 해도 배가 뒤틀리게 아프고 몸이 떨리는 등 금단 증상이 다른 전통적인 마약들보다 훨씬 심한데, 결국에는 숨을 헐떡이다 호흡 곤란으로 숨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가적 차원에서 펜타닐 규제에 나선 대표적 사례로는 미국을 꼽을 수 있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마약성 진통제 남용 문제와 관련,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관절통 등 심각하지 않은 통증에도 마약성 진통제가 처방되면서 사망자가 급격히 늘어난 탓이다. 미국 내에서 약물 과다 복용 사망과 관련해 가장 많이 오ㆍ남용되고 있는 마약이 펜타닐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펜타닐과의 전쟁’을 선언한 셈이었다. 예컨대 2017년의 경우, 약물 과다 복용으로 숨진 7만237명 가운데 약 40%가 펜타닐 관련 사망자였다. 헤로인(22.8%), 코카인(21.3%), 메스암페타민(필로폰ㆍ13.3%) 등 전통적인 마약류 사망자보다 많을 정도로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우리나라도 무분별한 처방으로 인한 약물 중독 환자 양산을 경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의 ‘마약률 남용의 실태와 대책 보고서’ 집필위원장을 맡았던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사용법에 대한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의사들도 펜타닐 처방 시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