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종교는 영딴판이다. 정치의 시선은 우선 세상을 향한다. 분노는 변화와 혁신의 원천이다. 연대하고 뜻을 모으고 집단 지성을 발휘하다 보면 상황을 돌파할 해결책이 윤곽을 드러낸다. 이로써 엉망진창을 고칠 도구를 고심하는 게 제도권 정치인의 업이다. 종교의 시선은 우선 나를 향한다. 분노는 제 몸을 태울 뿐이다. 고요히 호흡하고 묵언(默言), 하심(河心) 속에 기도하거나 내 안의 탐진치(貪瞋痴)를 반성하다 보면 번뇌를 다스릴 말씀, 지혜, 영성이 명료해진다. 이로써 엉망진창을 견딜 ‘마음 가짐’을 훈련하는 게 신앙인의 업이다.
종교가 혁명의 최대 훼방꾼으로 지목된 건 당연한 귀결이다. 닮은 점도 없진 않다. 정치와 종교는 공히 무릎을 탁 치게 하는 해갈을 선사하기도 한다. 교착 상태를 푸는 묘안은 작게는 법문, 강론, 설교 속에 크게는 정책, 법안, 선언, 회담 안에 존재하는 탓이다.
일하는 국회를 공언했던 21대 국회의 원 구성 협상이 파행으로 일단락 된 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칩거의 장소로 산사(山寺)를 택한 장면은 그래서 절묘해 보였다. 단지 쉴 곳을 찾았다고 보기에 그는 소문난 불교통이다. 매일 일과를 108배로 열고, 경전에도 밝다. 상상력이 동원됐다. 여야엔 숨 고를 시간을 주고, 스스로는 상대를 향한 시선을 거둬오는 계기가 되진 않을까.
마침내 칩거 수 일만에 나온 주 원내대표의 일성은 이런 기대에 부응하는 측면이 있었다. 그는 “돌아갈 확률이 없진 않다”고 등원 여지를 열었다. “상임위에 들어가면 죽기 살기로 싸울 것”이라며 ‘담론 투쟁하는 야당’도 예고했다. 여야의 정책경쟁을 바라는 국민들로선 반가운 얘기였다. 그런데 이어지는 메시지는 아리송했다. 통합당은 “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얻는다”(화엄경)며 재차 민주당의 통 큰 양보를 요구했다.
제1야당 원내대표가 산사에서 답을 구한지 1주일이 되어가지만 여야의 시선은 여전히 상대에게만 있다. 여의도 문법에 비추면 한가하고 순진한 얘기지만, 기왕 주무대를 산사로 옮긴 김에 ‘칩거 사용 설명서’의 기본을 돌이킬 순 없을까 싶다. 칩거, 수행, 기도의 기본은 자신의 호흡을 살피고 자신을 최선의 상태로 일깨우는 것이란 원칙이다. “가난, 폭력, 기후변화 등 온갖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선행 조건 역시, 자신에게 집중해 최선의 상태를 만드는 일”(틱낫한)이라는 명제다.
시선을 안으로 돌리면 붙들 화두는 수두룩하다. 민주당의 독주에도 여론조사(리얼미터) 결과 응답자의 52.4%가 ‘잘한 일’이라고 박수치는 상황은 과연 통합당의 어떤 모습 때문인가. 20대 국회 내내 야당 법사위원장이 체계ㆍ자구 심사권을 활용해 무시로 법안을 반려했지만, 이를 통해 국민을 설득해 권력을 얻지 못한 결과는 무엇을 의미하나.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한 쪽 바퀴가 크다고, 결과와 성과로 책임질 수 있다고, 42%의 국민이 지지한 제1야당을 ‘없는 존재’ 취급하는 국회는 언제까지 지속 가능한가. 전격적인 데탕트를 마련할 여지는 없나. 자문할 사항은 많다.
적당한 곳에서 조우하지 못했지만, 두 원내 사령탑의 뇌리엔 이미 국민들이 고대하는 답이 나란히 존재하는 듯 하다. “위기에 가속도가 붙었다. 국회가 숙의의 총량을 유지하면서도 빠르게 대응해내야 한다. 성과로 국민에 답해야 한다.”(김태년 원내대표) “국회의 존재 원리는 견제와 균형이다. 돌아가면 죽기 살기로 야당 역할을 보여줄 것이다.”(주호영 원내대표) 최후통첩은 거두고 함께 등원의 명분을 찾을 시간이다. 국회라는 무대에서 나란히 민심의 주인이 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