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독재에 맞서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586(50대, 1980년대 학번, 1960년대생) 정치인들에 대한 평가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개혁을 표방했던 이들이 집권과 함께 기득권층이 돼버려 다른 세대에 비해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조국 전 법무장관의 '내로남불' 논란은 586에 대한 이런 부정적 인식을 키웠다. 집권당 주류가 된 상황에서, 이제 이들이 정치적 기득권이라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지만, 경제적 관점에서의 평가는 그동안 유보적이었다.
그렇다면 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주류인 운동권 출신 586 국회의원들은 부와 권력을 동시에 거머쥔 기득권층일까. 아니면 일반 국민들과 비슷한 삶을 살아온 서민층에 속할까. 한국일보는 10년 이상 국회의원을 지낸 586 여당 정치인들의 초선 시절부터 최근까지의 재산변동 흐름을 분석해, 이들이 경제적으로도 기득권층으로 불릴 만한지 살펴봤다. 분석 대상은 20대 국회의원 임기를 마친 3선 이상 의원과 21대 총선에서 당선된 4선 이상 의원으로, 매년 공표되는 국회 공보와 정부 관보를 참고했다.
민주당 '86그룹'은 1980년대 대학을 다니며 학생운동과 사회운동에 투신한 경험을 공유한 정치인 그룹을 일컫는다. 대학 졸업 후 경제활동보다는 정치권에 일찍 발을 들여놔 어느새 중진 정치인이 된 국회의원들이 적지 않다. 한국일보가 의원 재직기간 중 이들의 재산을 연도별로 확인한 결과, 약속이나 한듯 취임 초기 1억원 정도에서 출발해 지금은 10억원 안팎으로 재산을 불린 의원들이 다수였다. 이인영ㆍ조정식 의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김영춘 국회 사무총장 등이 ‘1억→10억' 변화의 주인공들이다.
운동권의 상징인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1기 의장 출신이자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이인영(56) 의원의 재산은 배지를 처음 달았던 2004년 1억3,000만원에서 올해는 10억원으로 8억7,000만원 늘어났다. 이 의원은 그때나 지금이나 지역구인 서울 구로구에 같은 아파트(71.06㎡ㆍ배우자 명의)를 갖고 있다. 아파트값이 이 기간 1억3,000만원에서 2억2,000만원으로 증가하고, 예금 4억7,000만원(본인 6,000만원, 배우자 4억원 등)이 생긴 게 주된 재산증가 이유로 분석된다. 다른 부동산이나 주식은 2004년부터 최근까지 없었다.
대학 졸업 후 프레스공으로 취업해 노동운동에 투신했던 5선의 조정식(57) 의원은 586 의원 중 드물게 2주택자다. 부부가 현재 지역구인 경기 시흥시에 아파트 두 채(합계 5억1,000만원)를 보유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조사한 같은 아파트, 같은 평수의 지난해 실거래가는 두 채를 합쳐 6억6,000만~7억9,000만원으로 조 의원이 신고한 가격보다 1억~2억 정도 많다. 17대 국회 첫해인 2004년 조 의원의 재산은 경기 김포시 아파트 한 채를 포함해 1억5,000만원이었는데, 올해는 10억1,000만원으로 늘었다.
부동산 정책 최고 책임자인 김현미(58) 국토교통부 장관의 재산은 국회에 입성한 첫 해인 2004년 1억1,000만원에서 올해 9억2,000만원으로 8억원 정도 증가했다. 부동산 자산만 분리해 보면 같은 기간 1억2,000만원에서 6억4,000만원으로 5억여원 늘었다. 2004년에는 1억2,000만원인 아파트 한 채(84.88㎡)를 보유했지만, 현재는 본인 소유 일산 아파트 한 채(5억3,000만원ㆍ146.61㎡)와 배우자 소유 경기 연천군 토지(1억1,000만원)를 보유 부동산으로 신고했다.
1984년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3선 의원 출신의 김영춘(58) 국회 사무총장은 한나라당 소속으로 여의도에 둥지를 튼 2000년 재산이 1억7,000만원이었지만, 올해 신고한 재산 총액은 10억8,000만원이다. 2000년 그는 1억4,000만원의 서울 광장동 현대아파트(84.97㎡)와 전세보증금 1억2,000만원, 채무 1억6,000만원 등을 갖고 있었다. 20년이 지난 올해 김 사무총장은 광장동 아파트 가격을 5억8,000만원으로 신고했다. 그러나 같은 아파트 같은 평수의 매물이 지난해 8억7,000만~11억500만원에 거래된 점에 비춰 실제 재산은 신고된 재산보다 3억~5억원 더 많을 수 있다. 김 사무총장의 재산공개 실무를 담당한 인사는 "자주 바뀌는 실거래가보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하는 공시가격이 더 정확한 재산 정보라고 생각해 공시가격을 제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밖에 예금 4억9,000만원과 지역구였던 부산진구 아파트의 전세보증금 4억원 등을 올해 재산으로 신고했다.
전대협 간부 출신의 김태년(56) 민주당 원내대표와 우상호(58) 의원의 재산은 현재 10억원에는 조금 못 미치지만, 앞선 586 의원들의 재산 변동 흐름과 큰 차이는 없었다.
김 원내대표는 국회의원이 된 첫 해인 2004년 부채가 자산보다 많아 순자산이 마이너스(-) 1,000만원이었다. 당시 김 원내대표 본인의 재산은 마이너스 4,500만원으로, 함께 재산을 신고한 배우자(1,900만원)와 모친(1,600만원) 재산이 없었으면 적자 폭이 더 컸을 뻔했다. 의원 배지를 단 이후 줄곧 무주택였던 김 원내대표는 2015년 내집 마련을 했다. 자신의 지역구인 경기 성남시 수정구에 5억2,000만원짜리 아파트를 부인과 공동 명의로 샀다. 현재는 이 집과 예금 3억8,000만원, 아파트 구입 대출 등의 채무 2억5,000만원 등 8억2,000만원이 재산총액이다. 김 원내대표 측은 “지금 재산 가운데 시골에 사는 어머니 집과 공금인 정치자금 계좌를 제외하면 순자산은 6억5,000만원 정도로 전액 급여를 저축해 모은 것”이라며 “부동산이나 주식투자는커녕 오해를 살까 봐 펀드투자도 하지 않을 정도로 재테크와는 담을 쌓고 지낸다”고 전했다.
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4선의 우상호 의원 재산은 2004년 9,000만원에서 올해 8억원으로 7억1,000만원 늘었다. 무주택자였던 우 의원은 2005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아파트를 1억2,000만원에 구입했다가 2017년 3억원에 팔고 현재는 홍제동에 보증금 4억원짜리 전셋집에 사는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경기 포천시에 단독주택(66.3㎡)을 갖고 있어 무주택자는 아니다. 우 의원은 “모친이 돌아가셨을 때 받은 조의금으로 포천에 작은 땅을 사놓은 것”이라며 “나머지는 일반 직장인보다 많은 국회의원 월급을 43세때부터 모아서 늘어난 현금성 자산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30대에 국회의원을 배지를 달았던 5선의 송영길(57) 의원은 2000년 1억3,000만원에서 2020년 6억4,000만원으로 재산이 늘었다. 송 의원은 2000년 배우자 명의로 인천 부평구 소재 아파트 한 채(1억1,000만원)를 갖고 있었지만, 2002년 처분한 뒤로 현재까지 무주택이다. 송 의원은 지난해 배우자 명의로 보증금 1억8,000만원을 내고 지역구인 인천 계산동 현대아파트(71.17㎡)에 전세로 살고 있다. 송 의원은 "부동산 소유에 뜻이 없고, 자녀들이 장성해 부부만 전세 아파트에 따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송 의원은 올해 전남 고흥군 등의 부친 소유 8,400만원 상당 토지도 새롭게 재산으로 등록했다.
동국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21대 총선에서 낙선한 최재성(55) 전 의원은 재산이 2004년 3억1,000만원에서 올해 7억5,000만원으로 4억4,000만원 증가했다. 의원 취임 시점에 최 전 의원은 무주택이었으며, 모친 재산으로 신고한 2억5,000만원이 전재산의 80% 이상을 차지했다. 그러다 2004년 6월 경기 남양주시에 은행 대출 등으로 1억3,000만원짜리 아파트를 구입했다. 최 전 의원은 지난해 남양주 아파트를 2억2,500만원에 매도하며 다시 무주택자가 됐다. 올해 신고한 재산 중 액수가 가장 큰 것은 서울 송파구 석촌동 다세대주택의 전세보증금 4억8,000만원이다. 그 밖에 예금 3억7,000만원과 채무 2억4,000만원도 신고했다.
21대 국회 첫 법제사법위원장으로 선출된 4선의 윤호중(57) 의원은 재산 증가폭이 비교적 크다. 의원 첫 해인 2004년 1억7,000만원이었던 윤 의원의 재산은 올해는 16년 전보다 14억3,000만원 증가한 16억원에 달한다. 구체적인 재산 목록을 보면 2004년에는 서울 은평구 신사동 다세대주택(2,400만원)과 경기 구리시 아파트 전세금(1억3,000만원), 경기 가평 일대의 토지를 보유했고, 빚도 1억원 정도 있었다. 현재 재산은 지역구인 구리시의 아파트(3억8,000만원)와 배우자 소유의 구리시 주상복합(6억1,000만원) 등 부동산 자산 10억원 정도와 예금 4억7,000만원 등이 있다. 윤 의원은 재산이 늘어난 이유에 대해 “부모에게 상속 받은 시골 토지가 2008년쯤 매매돼 자산평가금액이 10억원 정도 증가한 게 가장 큰 원인이며, 아내도 장인으로부터 증여 받은 재산이 있다”고 밝혔다.
586 정치인들보다 조금 일찍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등에 투신한 1950년대생 선배 운동권 정치인들의 재산도 대체로 10억원 안팎 늘어났다.
민주당 당대표 출마 의사를 밝힌 4선의 김부겸(62) 전 의원은 586 후배들처럼 ‘1억→10억’ 수준으로 늘었다. 그는 2000년 한나라당 소속 초선의원일 때 재산을 1억5,000만원으로 신고했지만, 민주당 소속인 현재 재산은 10억9,0000만원으로 늘었다. 김부겸 전 의원은 김영춘 사무총장과 함께 2003년 열린우리당으로 옮겼다. 김 전 의원은 2000년 지역구였던 경기 군포시의 전셋집 보증금 9,000만원과 지구당사무실 전세보증금 1,500만원, 고향인 경북 영천시의 토지 1,500만원 등이 재산의 전부였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현재 김 전 의원의 재산은 대구 수성구의 3억4,000만원 상당 아파트(84.93㎡)와 서울 마포구 신공덕동 전셋집 보증금(5억6,000만원), 예금(1억7,000만원) 등으로 규모가 커졌다.
민주당 원내대표 출신인 우원식(63) 의원은 17대 국회 첫해인 2004년 4억4,000만원에서 2020년 20억원으로 16억원 가까이 재산이 늘어났다. 부동산 가격 상승이 우 의원의 재산증식에 기여했다. 재산공개 명세를 보면 우 의원 배우자는 2004년 7월 학원 운영을 위해 장부가액 7억2,000만원인 서울 노원구 중계동 건물을 5억3,000만원에 샀다. 우 의원은 당시 “은행 대출금, 학원 매도금, 차입금 등으로 샀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 건물 가격이 현재 11억2,000만원으로 매입가의 두 배 이상으로 올랐다. 그 밖에 서울시 노원구 연립주택 가격도 1억6,000만원에서 3억2,000만원으로 두 배 증가해 재산 증식에 기여했다.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지난해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4선의 홍영표(63) 의원은 18대 재보궐 선거 이듬해인 2010년 재산을 9억3,000만원으로 신고했다. 10년이 지난 올해 신고한 재산은 10억원으로, 물가 상승 등을 감안하면 재산총액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 예금이 1억9,000만원에서 3억4,000만원으로 늘고 주거형태가 2억5,000만원 전세에서 4억4,000만원의 자가(부인 명의)로 바뀐 게 눈에 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빌려준 돈(채권)이 2억5,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감소하는 등 재산 감소 요인이 있었다.
운동권 원로인 7선의 이해찬(68) 민주당 대표는 재산공개 제도가 처음 시행된 1993년 2억1,000만원을 신고했지만, 현재 재산은 13억9,000만원이다. 그는 자신의 지역구였던 서울 관악구 아파트(3억7,000만원), 세종시 주택(2억6,000만원), 예금 8억5,000만원 등을 갖고 있다. 또 다른 운동권 원로인 5선의 설훈(67) 최고위원 재산은 배지를 달았던 첫해(1996년) 7,000만원에서 올해 7억6,000만원으로 증가했다.
10억원 안팎의 재산은 비슷한 연령대의 일반 국민과 비교해 어떤 수준일까.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보면 2019년 50대 가구주의 평균 순자산은 4억여원이다. 또한 재산이 많은 순서대로 일렬로 세웠을 때 중간에 위치하는 값을 뜻하는 순자산 중앙값은 50대 가구의 경우 2억4,000여만원으로 조사됐다. 따라서 10억원 정도를 갖고 있는 586 다선 의원들의 재산 규모는 50대 가구 평균의 두 배 이상이고 중앙값의 네 배 정도이다. 통계청 조사에서 모든 연령 기준의 순자산 5분위(상위 20%) 금액이 10억9,000만원 정도라는 걸 감안하면, 586 다선 의원의 재산은 상위 20% 수준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젊은 시절 학생운동과 사회운동에 투신하느라 경제활동과 거리를 뒀던 이들이 현재는 중산층을 웃도는 재산을 형성한 주된 요인은 부동산 가격 상승의 영향도 있지만, 10~20년간 국회의원 생활을 하며 받은 고액 연봉의 영향이 커 보인다. 국회의원이 1년 동안 받는 세비는 지난 20년간 수 차례 인상돼 2000년에는 7,879만원이었지만 올해는 1억5,187만원에 이른다. 이는 일반 근로자 임금의 서너 배 수준이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지난 4월 상용근로자 월 임금은 평균 347만3,000원으로 연봉 환산시 약 4,170만원이다.
조사 대상 의원들도 재산이 늘어난 주된 이유로 “세비를 꼬박꼬박 모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 업무 특성상 사람 만날 일이 많아서 저축이 쉬운 일은 아니다. 지역구 사무실 운영비와 9명을 초과하는 보좌진 월급은 의원이 직접 마련해야 하고, 가족 생계를 위한 필수 지출도 생길 수밖에 없다. 더구나 국회의원은 세비 이외 다른 수입원도 없다.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의원은 겸직을 하거나 토지ㆍ건물 임대업 이외의 영리 활동을 하면 안 된다. 재임 기간 재산이 세비 수입만으로 10억원 불어났다면 3선 의원은 세비의 60%가량을, 4선 의원은 세비의 50%가량을 매년 저축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들의 재산증가를 바라보는 평가는 엇갈린다.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은 “의원 세비가 평균 임금의 1.5~2배 정도인 스웨덴 등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한국 국회의원들의 세비가 굉장히 많은 편”이라며 “민주주의를 위해 봉사하는 직책인 국회의원이 이런 규모의 재산을 형성할 정도로 큰 돈을 버는 건 일반 국민에 비해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88만원 세대’의 저자인 경제학자 우석훈 박사는 “586 여당 의원들이 정치적 권한이 커진 건 사실이지만, 이 정도 재산 증가를 두고 ‘국회의원이 돼서 치부(致富)를 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평가했다. 비슷한 나이대의 웬만큼 사는 사람들은 그보다 재산이 더 늘어난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도 “50대가 전체적으로 지금의 젊은 세대보다 부동산 가격상승 등의 수혜를 더 많이 받은 것은 분명하지만, 정치인만 재산이 많이 늘어난 것은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586 의원들은 이에 대해 자신의 경제적 이득을 위해 정치활동을 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윤호중 의원은 “국회의원은 공익을 위해 봉사하는 자리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격차 해소를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