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동안 매주 열린 '수요시위', 보수단체에 자리 뺏겼다

입력
2020.06.22 11:37
집회신고 우선순위서 밀려


지난 28년 동안 매주 옛 주한 일본대사관 정문 앞에서 열린 '수요시위'가 장소를 옮겨 열리게 됐다. 수요시위를 반대하는 보수단체가 해당 장소에 먼저 집회신고를 했기 때문이다. 

22일 경찰에 따르면 자유연대는 이달 23일 자정부터 다음 달  중순까지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앞에 집회 신고를 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평화의 소녀상이 있는 곳이다. 자유연대가  집회 신청을 하면서 우선순위에서 밀린 정의연은 오는 24일 남서쪽으로 10m 가량 떨어진 연합뉴스 사옥 앞에 무대를 만들고 시위를 진행할 예정이다. 같은 시간 자유연대는 소녀상 근처에서 수요시위 반대집회를 예고했다.

집회는 먼저 신고한 단체에 우선권이 주어진다. 집회 신고는 매일 자정부터 가능한데, 자유연대 등 보수단체 관계자들은 정의연 회계 의혹이 불거진 지난달부터 소녀상 앞을 차지 하기 위해 서울 종로경찰서 민원봉사실 옆 가건물에서 24시간 대기하며 집회 신고를 해왔다. 이들은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사퇴할 때까지 옛 일본대사관 앞에 집회신고를 한다는 방침이다.

정의연은 자유연대의 자리 선점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정의연 관계자는 "자유연대가 밤을 새워가며 집회 신고를 한다는데 우리는 사람이 부족해 선순위 등록을 할 여력이 없다"면서 "자유연대의 선량한 시민의식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소녀상 주변을  지키기 위해 대학생 단체도 나섰다. '대학생 겨레하나'는 매주 수요일 자유연대 등 수요시위를 방해하는 단체들에 맞서 릴레이 1인 시위를 펼치고 있다. 이진희 대학생 겨레하나 대표는 "수요시위 30년 역사는 우리의 역사이자 자존심"이라며 "일본 정부로부터 식민지배에 대한 인정과 사죄ㆍ배상을 받을때까지 묵묵히 수요시위를 지키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두 단체 사이 벌어질 수 있는 마찰을 방지하기 위해 완충지대를 확보하는 식으로 현장을 관리할 계획이다. 이에 두 단체의 집회는 경찰의 통제 아래 당분간 소녀상을 중심으로 양쪽에서 각각 열리게 된다.

수요시위는 1992년 미야자와 기이치 당시 일본 총리의 방한에 앞서 정의연의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회원 30여 명이 일본 대사관에서 개최한 집회가 시초다. 1995년 고베 대지진 때를 제외하면 수요시위는 28년간 같은 장소에서 매주 수요일 열렸다.

안하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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