킨제이 보고서와 동성애

입력
2020.06.23 04:30
Alfred Kinsey(6.23)


 미국 생물학자 알프레드 킨제이(1894.6.23~ 1956.8.25)가 ‘여성의 성적 행위(Sexual Behavior in the Human Female)를 발표한 1953년을 기점으로 매 10년마다  세계는 그가 끼친 성 인식의 변화와 문명사적 의미를,  경의를 담아 반추해 왔다. 특히 '여성 편'에 주목했다. 50주년이던  2003년 AP는 '남성 편'이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다면, '여성 편'은 “지옥 불을 점화시켰다”고 썼다.

 킨제이 보고서의 가장 근본적 의미가 사실 그것, 즉 내용 자체보다 둘에 대한 반응의 온도 차를  드러낸 거였다. 당시 세계는 유부남 약 절반이 바람을 피운다는 것보다 유부녀 넷 중 한 명이 혼외정사를 경험한다는 사실에,  여성 약 절반이 혼전 성경험(남성은 85%)을 한다는 사실에 더 경악했다.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젊은이들이 책을 읽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여러 나라가 그의 책을 금서로 지정했다. 

 킨제이는 약 10년간 1만1,240명(여성 5,940명)을 인터뷰해 보고서를 썼다. 형식은 무척 건조하고 딱딱했다. 초판 842쪽에 달한  '여성 편'의 내용 태반이  통계 숫자와 표, 그래프였다. 그는 숫자만으로,  성에 대한 편견과 억압을 위선적 종교ㆍ윤리의 굴레에서  해방시켰고, 특히 여성 성의 터부에, 가장 치명적인 급소에 거침없는 해머질을 가했다. 

 여성주의 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1934~)은 강연에서 '킨제이의 가장 값진 기여는 그의 연구에 여성을 포함시켰다는 사실'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킨제이 보고서는 실생활에서 유효해야만 힘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권리장전과 닮았다. 단지 인쇄물로만 존재한다면 전혀 중요하지 않으며, 지금 당장 우리의 생각과 삶이 바뀔 때에만 유의미하다.”

 그는 동성애, 이성애의 스펙트럼을 6단계의 '킨제이 지수'란 걸로 구분, 사실상 동성애를  인류 보편의 현상으로 활짝 개방했다. 다만 그는 성 지향을 취향과  혼동하고, 정체성의 자각 여부를 감안하지 않아, '취향의 유동성'을 긍정했다. 극단의 보수주의자들이  보고서에서 거의 유일하게 긍정하는 대목이 그거였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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