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ㆍ불평등ㆍ위험’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가치는

입력
2020.06.23 04:30
24면
<27> 시대정신

편집자주

2020년대 지구적 사회 변동의 탐색을 통해 세계와 한국의 미래를 생각합니다. 매주 화요일 <한국일보>에 연재됩니다.



시대정신이란 말의 기원을 이룬 것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파우스트’다. “그대들이 시대정신(Zeitgeist)이라 부르는 것은 실로 매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 저자(著者) 양반들 자신의 정신이라네.” ‘파우스트’에 나오는 구절이다. 한 사회가 나가야 할,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가치의 집약이 곧 시대정신이다. 2020년대의 시대정신은 그렇다면 무엇일까.


2010년대를 돌아보며


후대의 역사가들은 2010년대를 예상컨대 대침체 이후 암중모색기였다고 부를 가능성이 높다. 대침체란 2008년 금융위기를 지칭한다. 금융위기가 1980년대 이후 공고화된 신자유주의 질서를 해체하기 시작한 이래, 특히 서구사회에서 지난 10년은 새로운 질서로 나가는 변화와 그 이면을 이루는 불안이 혼돈스럽게 공존해있던 시대였다.

이 두 흐름 가운데 먼저 시선을 끈 것은 불안이었다. 이 불안을 선구적으로 포착한 이는 철학자 리처드 로티와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었다. 로티는 1990년대 후반에 21세기의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사회적 불평등이 확산되고, 저급한 선동 정치가가 등장하며, 병적인 가학성 세계로 회귀해 여성과 소수자를 증오하는 경향이 두드러질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바우만은 ‘유동하는 공포’(2006)에서 이 불안의 실체를 좀 더 분명히 묘사했다. 전통적인 복지국가를 대신해 이제 “소아성욕자, 이상행동자, 연쇄살인마, 강압적 거지, 강도, 스토커, 부랑자, 유해 음식물 판매자, 테러리스트 등이 주는 위협 쪽으로 주된 관심이 이동”했다는 게 그의 진단이었다. 불안은 이민자 등 ‘내부의 적’에 대한 분노의 불을 댕겼고, 이는 포퓰리즘 발흥의 정치적 토양을 이뤘다.

한편, 새로운 질서로 나가는 변화를 주도한 것은 과학기술혁명의 진전이었다. 지난 10년간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의 제4차 산업혁명을 위시해 디지털경제, 공유경제, 플랫폼 비즈니스가 부상하면서 경제의 구조변동이 빠르게 진행됐다. 애플,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등은 이제 경제와 산업과 기업의 대명사가 됐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얼리 어답터들은 발 빠르게 적응한 반면, 슬로우 어답터들은 작지 않은 어려움을 겪어 왔다.

정보경제학자 에릭 브린욜프슨과 앤드루 맥아피는 ‘기계와의 경쟁’(2012)에서 이러한 변화의 과정에서 진화하는 기술이 가져올 사라지는 일자리에 대한 두려움이 피어난다고 지적했다. 두 사람이 ‘제2의 기계 시대’(2014)에서 다시 한 번 강조했듯, 과학기술 변화는 모든 이들에게 동일한 결과를 안겨주지 않는다. 새로운 기술이 미숙련 일자리를 대체하고, 자본이 노동보다 더 많은 몫을 차지하며, 재능이 뛰어난 이들이 부를 독점할 가능성이 커져 왔다.





이런 시대적 상황 안에는 ‘정체성 정치’가 배양되고 있었다. 정체성이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응답하는 사유ㆍ감정ㆍ이념을 뜻한다. 불안과 두려움이 커질수록 그것들로부터 벗어나려는 욕구가 자연스런 것이라면, 바로 이 불안과 두려움에 맞서서 존재의 이유를 알려주고 존재의 당위성을 인정받게 하는 게 곧 정체성이다.

국제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정체성: 존엄성의 요구와 분노의 정치학’(2016)에서 이러한 정체성을 최근 정치변동을 독해할 ‘마스터 개념’으로 파악했다. 종교, 인종, 민족, 그리고 젠더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들이 훼손되는 현실에 분노하고 저항하는 정체성 정치가 기성 근대정치를 대체해 왔다. 포퓰리즘은 이러한 정체성 정치의 대표격이었다.


2020년대와 시대정신의 미래

이처럼 2010년대의 풍경을 이뤄온 것은 불안의 사회, 변화의 경제, 정체성 정치였다. 대체적으로 우울한 색채가 두드러졌지만, 그렇다고 비관적 전망만 존재한 것은 아니었다. 다보스포럼 회장 클라우스 슈밥은 ‘제4차 산업혁명’(2016)에서 급진적이고 근본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새로운 혁명’이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시각은 금융위기 이후 세계를 ‘거대한 후퇴’로 명명한 정치경제학자 볼프강 슈트렉 등의 견해와 주목할 대비를 이뤘다.

2020년대가 열린 현재, 우리 인류는 새로운 혁명과 거대한 후퇴 사이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올해 초 코로나19가 기습적으로 찾아왔다. 새로운 혁명과 거대한 후퇴에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말한 ‘글로벌 위험사회’가 더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2020년대를 이끌어갈 새로운 시대정신은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앞서 말했듯, 시대정신은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집약된 가치다. 현재 인류가 갖고 있는 집합 감정이 새로운 혁명에 대한 기대, 거대한 후퇴에 대한 분노, 글로벌 위험사회에 대한 불안에 있다면, 시대정신은 이러한 기대와 분노와 불안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제시해야 한다.



먼저, 제4차 산업혁명을 통해 기대하는 것은 새로운 성장과 고용이다. 그런데 문제는 제4차 산업혁명이 새로운 성장을 이끌되 고용은 감소시킬 것이라는 우려에 있다. 디지털 기술 및 환경이 가져오는 결과는, 플랫폼 비즈니스의 부상에서 볼 수 있듯, 일상 및 사회생활 방식에 작지 않은 변화를 낳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해 노동시간 단축, 일자리 나누기, 기본소득 보장 등의 의제들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과학기술과 정부정책을 아우르는 가치의 핵심은 다름 아닌 ‘혁신’이다. 오늘날 혁신경제로의 이행을 어떻게 원활하게 이룰 것인가보다 중요한 과제는 없다.

한편, 거대한 후퇴가 안겨주는 분노는 불평등의 강화와 민주주의의 후퇴가 핵심을 이룬다. 21세기의 불평등이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지적한 세습자본주의의 부활로 더욱 구조화되고 있다면, 민주주의는 포퓰리즘의 발흥으로 새로운 시련을 겪고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불평등에 맞서는 공정과 평등이, 포퓰리즘에 대응하는 다원적ㆍ숙의적 민주주의의 상상력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거대한 후퇴를 ‘새로운 전진’으로 바꿀 수 있는 가치의 핵심은 ‘정의’다. 정의는 공정과 평등, 다원성과 숙의성을 포괄한다는 점에서 우리 인류의 오래된 미래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2020년대 벽두에서 조우한 글로벌 위험사회에 대한 적절한 대처도 중대하다. 앞으로 비규칙적으로 도래할 팬데믹에 대응해 안전한 사회를 일궈가야 하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든 국가적 과제다. 과학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의료 공공성을 제고하며 고용보험 등 복지국가를 강화하고 훼손된 지구적 거버넌스를 복원함으로써 글로벌 위험사회에 대비하는 것은 2020년대 팬데믹 시대가 부여하는 중차대한 과제라 할 수 있다.

요컨대, 지구적 차원에서 2020년대의 시대정신은 ‘혁신·정의·안전’으로 집약된다. ‘파우스트’로 돌아가면, 괴테는 “모든 이론은 회색이라네. 그러나 삶의 황금나무는 초록색이지”라고 노래했다. 21세기에 ‘초록의 삶’이란 지속가능한 인간적 삶이다. 이 지속가능한 인간적 삶을 구현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혁신과 정의와 안전이 우선돼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사회와 시대정신

1945년 광복 이후 우리나라의 시대정신은 현대에 걸맞은 새로운 ‘나라 만들기’였다. 그것은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는 ‘경제적 산업화’와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정치적 민주화’로 구체화됐다. 21세기에 들어와선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한 ‘복지국가’가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부상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현실이 저성장과 불평등, 불안과 분노의 사회라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의 위험이 새로운 현실로 더해지고 있다. 이러한 경제의 불확실성에 대해 국민 다수는 이념과 세대를 뛰어넘어 더 많은 일자리를 소망하고 있다. 그리고 세계화된 위험에 대해선 생명을 최우선하는 안전한 사회를 희구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특권과 차별을 해소하는 공정한 시스템 구축에 대한 열망이 존재한다. 이처럼 2020년대 벽두인 현재 ‘일자리ㆍ공정ㆍ안전’은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대정신의 구현은 정치사회와 시민사회의 협업을 요구한다. 정치사회의 리더십과 시민사회의 팔로워십이 생산적으로 결합할 때에 시대정신은 현실에서 성취될 수 있다. 일자리ㆍ공정ㆍ안전의 시대정신을 실현할 정책들을 정치사회가 얼마나 정교하게 가다듬고 효율적으로 제도화할 수 있을지, 그리고 이에 시민사회가 얼마나 부응할 수 있을지에 우리 사회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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