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측근들에게 칼을 휘둘렀던 제프리 버먼 뉴욕 남부연방지검장을 해임했다. 버먼 지검장이 한 때 버티기에 들어가 정면충돌 가능성도 고조됐으나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다. 올해 2월 탄핵 청문회가 종료된 후 눈엣가시 같은 인사들을 ‘금요일 밤’마다 숙청해왔던 트럼프 대통령이 검찰 핵심 요직도 쳐내며 검찰 길들이기를 본격화한 모습이다.
월리암 바 미 법무장관은 19일(현지시간) 오후 늦게 트럼프 대통령이 버먼 지검장 후임으로 제이 클레이턴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을 지명할 계획이라고 기습 발표했다. 버먼은 수시간 뒤 성명을 내고 “나는 사임한 적도 사임할 의사도 없다”고 반박해 긴장이 높아졌다. 그러자 바 장관은 이튿날 버먼에게 서한을 보내 "당신이 물러날 의사가 없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대통령에게 오늘부로 해임을 요청했고 대통령이 그렇게 했다"고 통보했다. 바 장관은 상원에서 후임을 인준할 때까지 차석인 오드리 스트라우스가 지검장 대행을 맡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정상 출근했던 버먼 지검장도 해임 통보를 받아들였다. 일간 뉴욕타임스(NYT) 등은 "자신 밑에서 일한 스트라우스 차장 검사를 대행으로 지명한 것이 버먼의 마음을 누그러뜨린 것 같다"고 전했다. 버먼은 성명에서 “뉴욕 남부지검은 독립성과 진실성의 오랜 전통을 계속 지켜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스트라우스를 얼마나 오래 대행으로 둘지는 확실치 않다는 게 미 언론의 분석이다.
세계 최고 금융가 맨해튼을 관할 구역으로 두고 있는 뉴욕 남부지검은 주가조작 등 금융범죄 수사로 명성을 얻어 ‘월스트리트의 보안관’이라 불리는 검찰 핵심 요직이다. 트럼프와 충돌했던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 트럼프의 개인변호사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등이 이곳을 거쳐갔다. 법무부 산하 93개 연방지검 중 수사 독립성도 가장 높아 ‘뉴욕 독립 지검’이란 자부심이 충만하다.
트럼프는 취임 후 뉴욕 남부지검장에 공화당원이자 트럼프 캠프에 기부했고 인수위에서도 일한 버먼을 낙점했으나, 그는 오히려 권력 눈치를 보지 않는 남부지검의 전통을 따랐다. 버먼은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의 집사 노릇을 했던 마이클 코언을 기소해 3년 유죄 판결을 받아냈고 트럼프 재단의 선거자금법 위반도 수사했다. 트럼프의 최측근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에 대한 조사도 진행하고 있다. 결정적으로 터키 국영은행의 이란 제재 위반 혐의를 수사해 트럼프의 심기를 건드린 것으로 알려졌다.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회고록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이 사건을 무마시켜달라고 요청하자 트럼프가 “남부지검 검사들은 내 사람들이 아니라 (버락) 오바마 사람들이다. 그들이 교체돼야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며 불평했다고 전했다. 트럼프의 충복인 바 장관도 남부지검은 통제가 되지 않는다며 주변에 불만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는 그러나 이날 "(버먼 해임은) 법무장관에게 달린 일로 나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발뺌했다. 대통령이 직접 해임했다는 바 장관의 서한과 배치되는 발언이다. 그는 최근 몇 달간 금요일 밤마다 눈밖에 난 정부 내 감찰 인사들을 제거하는 숙청 작업을 벌여왔다. 4월 3일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관련한 내부 고발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한 마이클 앳킨슨 정보기관 감찰관을 시작으로 5월 1일에는 크리스티 그림 보건복지부 감찰관, 같은 달 15일에는 스티브 리닉 국무부 감찰관이 해임됐다. NYT는 "버먼 해임 역시 금요일 밤 학살의 연장선상이며 트럼프의 공직자 숙청이 수개월 사이 더 심해졌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