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보수ㆍ진보 진영이 공동 전선을 편다. 교계 극우 세력을 위축시키기 위해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등을 거치며 지탄의 대상이 된 그들을 그냥 뒀다가는 개신교계 전체가 영영 신뢰를 잃고 말 거라는 위기감이 계기다.
개신교계 보수ㆍ진보 목소리를 각각 대변해 온 시민ㆍ사회 운동 단체 기독교윤리실천운동과 크리스챤아카데미는 지난 19일 서울 평창동 ‘대화의 집’에서 ‘대화 모임’을 가졌다. 이런 자리가 만들어진 건 두 단체가 각각 설립된 1987, 1956년 이후 처음이다.
‘분열된 사회와 교회의 책임’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회동의 핵심은 ‘연합 운동 단초 마련’이다. 두 단체는 “교회가 사회를 걱정하지 않고 오히려 사회가 교회를 걱정하는 전도된 상황 속에 한국 교회의 위기가 일정 수위를 넘어선 지는 이미 오래”라며 “한국 개신교의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양 단체가 손잡고 새 플랫폼을 만들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날 모임에서는 양측의 최고 원로급이라 할 수 있는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기윤실 자문위원장)와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가 발제를 맡았다. 중도 보수 성향으로 개신교계에 쓴소리를 종종 해 온 손 교수는 “용서와 화해, 사랑과 희생이 핵심인 복음을 전하고 실천하는 게 기본 사명인 한국 교회는 마땅히 사회 통합에 기여할 책임이 있는데도 오히려 스스로 분열돼 있고 도덕적 권위를 상실해 사회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현실 정치와 거리를 둬야 한국 교회의 통합이 가능하고 도덕적 실천 운동을 전개할 때 비로소 사회의 신임을 다시 얻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국내의 대표적 진보 신학자로 꼽히는 김 교수는 보수 개신교계의 관성을 끊어버릴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그는 “진보나 열린 보수 기독교는 전광훈 목사 집단만이 문제라고 여기지만, 세상 사람들은 숭미주의에 빠져 성장에만 집착해 온 한국 기독교계 전체가 공동 책임을 져야 한다고 여긴다”며 “시대착오적인 반공 이데올로기와 이웃 종교에 대한 배타적 우월주의를 버리지 않는다면, 역사가 한국 기독교를 버리게 될 것”이라 일갈했다.
양측 대표 자격으로 초청된 20명가량 교계 인사가 약 2시간 동안 벌인 토론의 구도는 단순하지 않았다. 극우 정치 세력화를 시도 중인 전광훈 목사류가 골칫거리라는 핵심 문제 의식에는 일단 모두가 공감했다. 문제는 처리 방식이다. “순진한 보수주의자를 꾀는 극단적 극우주의자까지 구원해야 하느냐”(김형국 나들목교회 네트워크지원센터 대표목사)는 회의론과 “북한ㆍ동성애에 대한 그들 내면의 순수한 두려움을 헤아려 교회가 그들을 품어줘야 한다”(정병오 기윤실 공동대표)는 관용론이 맞섰다.
기득권도 화두였다. “동성애가 옳지는 않지만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 대우에는 반대한다”는 손 교수의 두루뭉술한 논리에 보혁 양측 여성 전문가들 모두 반발했다. 보수 측인 강호숙 기독인문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이 “동성애는 그래도 사랑 아니냐”며 “교회 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위계적ㆍ폭력적인 교회 내 남성 기득권 문제”라고 질타하자, 진보 측 백소영 강남대 교수도 “남성이 발언권을 독점하며 젠더 문제는 의제조차 되지 않고 있다”고 거들었다.
젊은이들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이상철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은 “오로지 거대한 목표에만 집착하고 소수자ㆍ약자 등 타자에는 무신경한 기성 세대와 달리 청년들은 공정과 타자에 대한 감수성을 중요시한다”고 지적했다. 하성웅 한국기독청년협의회 총무는 “권위에 눌리거나 실망해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고 말했다.
위기 극복 방안을 놓고도 토론자들은 이견을 보였다. 박성철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 교수는 “극우 정치 세력과 결탁해 이권을 추구해 왔고 지금도 동성애ㆍ이슬람교 등 외부 적을 만들어 내부 부패를 은폐 중인 주류 보수 교단의 철저한 반성이 선행되고 신랄한 비판이 따라야 한다”고 역설했다. 근본주의를 발본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이미 보수ㆍ진보 간 이념색이 많이 희석된 만큼”(조성돈 기윤실 교회신뢰운동본부장) “통합을 위해 상호 약점 공격을 자제해보자”(장상 세계교회협의회 이사장)는 게 타협파의 제언이다. “개신교 보수ㆍ진보 사이에 대화 통로가 열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첫 만남은 성공”이라고 이삼열 대화문화아카데미 이사장은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