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공장의 새 고민 “여름엔 숨쉬기 편해야 하는데… ”

입력
2020.06.21 10:22
코로나19 속 첫 여름 준비 한창인 씨앤투스 성진 이천생산센터 르포 얇고도 KF80기능 지닌 새 제품 개발•기존 마스크 생산까지 두 개의 전쟁 중

“드르륵, 드르륵”

17일 경기 이천시에 위치한 마스크 제조업체 씨앤투스 성진 이천생산센터에서는 보건용 마스크를 생산하는 17대의 설비 라인이 쉴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땀이 뻘뻘 나는 공장과는 차원이 다른 환경. 혹여나 마스크에 땀 한 방울이라도 들어갈까 온도 23~24℃, 습도 55%의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계가 연신 뿜어대는 요란한 소리는 피할 길이 없었다.

이천생산센터에서는 24시간 설비를 가동해 하루에만 보건용 마스크 50만장가량을 생산하고 있다. 모든 설비를 가동하면 초당 8,9개의 마스크가 나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전까지만 해도 하루 20만장을 생산하던 것과 비교하면 생산량이 2.5배가량 늘어난 셈이다. 국내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시작한 2월 초부터 생산량을 늘리기 시작했고, 마스크 수급이 안정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지금도 조금씩 늘리고 있다.

이전과 같은 마스크 대란은 없지만, 지난해 이맘때 같았으면 팔리지도 않았을 마스크는 코로나19로 어느덧 생활 필수품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날씨가 더워지고 습도가 높이지면서 답답함을 호소하는 시민들도 늘어나고 있다. 성능은 보건용 마스크보다 못하지만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일회용 부직포 마스크나 덴탈 마스크 등을 쓰는 경우도 많아졌다.



공장을 24시간 가동하느라 직원들은 주ㆍ야간 2교대로 나눠 근무하고 있다. 코로나 확산 초기 마스크 대란이었을 땐 식품의약품안전처 직원이 공장에 살다시피 하면서 생산량을 늘려달라 요청했을 정도로 매일이 전쟁이었다고 한다. 직원들은 그렇게 몇 달을 주 7일 체제로 근무했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주 6일 근무로 사정이 나아진 편이다. 김경식 이천생산센터장에 따르면 직원들은 계속되는 2교대 근무로 피로도가 쌓인 상태지만, 책임감을 갖고 힘든 상황을 감수하고 있다.


식약처는 비말 마스크 권했지만…하 대표는 새 제품 개발 택했다


여름이 다가오면서 큰 숙제를 받아 안았다. 사람들이 기존 KF94, KF80 마스크 말고 얇고 가볍고 그러면서도 코로나19를 막아낼 수 있는 것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쓴 채 일해야 하는 이곳의 직원들도 불편함을 겪긴 마찬가지였다. 씨앤투스 성진은 이 같은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고민을 시작했다. 그러나 무작정 일회용 부직포 마스크나 덴탈, 비말차단용 마스크를 만들 순 없었다. 방역 상황을 고려하면 성능이 적어도 KF80 수준의 마스크는 돼야 안심하고 착용할 수 있겠다는 하춘욱 대표의 판단 때문이었다. 하 대표는 또 모두가 일회용 부직포 마스크, 비말 차단용 마스크 시장에 뛰어드는 상황에서 똑같은 마스크를 만들 필요는 없다는 것이 생각했다. 이에 얇고 편한 마스크와 보건용 마스크 사이의 접점을 찾기 시작했다.

식약처가 나서서 비말차단용 마스크 생산을 권했지만, 하 대표는 새로운 길을 택했다. 고민 끝에 탄생한 것이 매쉬 소재로 만든 필터교체형 마스크와 KF80 성능의 얇은 여름용 마스크였다.

이런 결정에는 13년 동안 산업용 마스크를 만들고 4년 동안 보건용 마스크를 만들며 쌓은 노하우와 자사 공장에서 멜트블로운(MB) 필터를 직접 생산한다는 이점이 영향을 미쳤다. 하 대표는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쓴 채 살아야 하는 첫 번째 여름”이라며 “마스크의 차단 기능은 유지하면서 대중이 원하는 편안한 마스크를 꼭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설명했다.



매쉬 소재의 필터교체형 마스크는 식약처가 그 동안 강조해 온 필터교체형 면 마스크와 같은 방식이다. 필터 기능도 KF80급이다. 다만 천이 아닌 매쉬 소재여서 착용했을 때 필터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기존 면 마스크나 보건용 마스크보다 덜 답답하고, 필터도 기존 보건용 마스크보다 얇게 만들어 숨쉬기 편하다.

여름용 마스크의 필터 기능도 KF80 수준으로 맞췄다. 그러나 두께는 확연히 다르다. 기존 KF80 제품이 안팎 부직포 재질과 MB필터, 형태를 잡아주는 에어스루 등 총 네 겹으로 돼있는 것과 달리 새로 만든 여름용 마스크는 에어스루가 빠져 세 겹으로 돼 있다. 실제로 착용해 보니 기존 KF80 마스크보다는 훨씬 가볍고, 일회용 부직포 마스크보다는 다소 두꺼웠다. 얇아진 KF80 성능의 마스크인 셈이다. 식약처에 KF80 인증도 신청한 상태다.

5월 초부터 시작한 새로운 도전은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렀다. 서울 사무소에 있는 개발팀과 마케팅 팀의 치열한 협의 끝에 시제품을 만들었고, 직원들이 직접 마스크를 착용해가며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있다. 여름용 마스크는 이달 말, 필터 교체형 마스크는 7월 초를 출시 목표로 마무리 작업에 한창이다. 가격은 정해지지 않았다.


코로나19 진정 이후엔 수출만이 살 길인데… “정부의 도움 절실”


마스크 대란에 이은 여름에 착용할 마스크까지. 일부에서는 마스크 업체가 코로나19로 떼돈을 번다며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저 앉아서 돈을 번 것만은 아니었다. 14대였던 보건용 마스크 제작 설비를 17대로 늘렸고, 70명 남짓하던 직원도 300명까지 늘렸다.

오히려 마스크 수급 상황이 안정화되기 시작한 지금은 고민이 크다. 마스크 수요가 계속 줄어 재고가 쌓이면 최악의 경우 몇 개월을 함께 일해 온 숙련공을 내보내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새로 생긴 마스크 업체는 문을 닫아야 할 수도 있고, 이곳처럼 서둘러 설비를 증설한 업체들은 다시 설비를 줄여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조성욱 마스크 사업본부장은 “새로 뽑은 직원들의 숙련도가 늘면서 생산량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 이들을 내보내야 한다면 회사로서는 손실”이라며 “수출량을 확보하거나 근무시간 조절 등으로 직원 수를 유지할 수 있도록 최대한 버텨보려 하지만 앞으로 걱정”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마스크 제조업체는 그 어느 때보다 살 길 마련이 절실하다. 마스크 대란을 기점으로 업체들에게 생산량을 늘리라 독려했던 정부는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이 부족하다는 게 업계의 불만이다.

정부가 최근 마스크 수출량을 생산량의 30%까지 확대하면서 수출 길이 열렸지만, 문제는 수출을 위해 필요한 준비가 막막하다는 것이다. 특히 해외 관계 기관으로부터 마스크의 제품 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이 장벽에 가로 막혀 수월하지 않다. 식약처와 중소벤처기업부 등 정부 기관에서 아직까지 해외 인증이나 수출 지원에 대한 안내나 도움은 없다고 한다.

조 본부장은 “정식으로 수출하려면 미국의 N95 등급과 유럽의 FFP 등급 등 해외의 마스크 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국내 업체의 마스크가 해외 인증을 받고 수출한 사례가 거의 없어서 인증 받는 방법조차 잘 모르는 상태”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국내 컨설팅 업체를 통해 인증 방법을 상담 받고 있지만, 이 업체도 경험이 부족하긴 마찬가지다. 그나마 씨앤투스 성진이 얼마 전 국가 브랜드인 ‘K-브랜드’로 선정된 만큼 해외 마케팅 등의 분야에서의 정부 지원은 기대해볼 만하다.

유례없는 호황을 맞은 마스크 시장이지만, 오히려 업체들은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 대표는 “국내 업체들이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코로나19 같은 위기가 또다시 닥쳤을 때 다 같이 합심해서 이겨낼 수 있다”며 “결국 살아남는 업체는 소수일 텐데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해외 시장에 진출해야 하고 정부의 도움이 꼭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천=글ㆍ사진 윤한슬 기자 1seu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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