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닐 레코드, 간단히 바이닐로 불리는 LP 음반이 최근 들어 다시 인기를 끌면서 음반 수집가들 사이에서도 ‘빽판’이 재조명되고 있다.
LP판의 라벨(음반 가운데 동그란 부분)에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아 백반(白盤)이라 불린 데서 유래한 빽판은 불법으로 제작해 유통시킨 해적 음반이다.
불법 해적음반은 세계 어느 곳에나 있지만 우리나라의 빽판은 독재정권의 억압적인 문화 정책, 낮은 수준의 저작권 인식이 만들어낸 어두운 자화상이란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단색 인쇄 커버 등 독특한 디자인으로 해외 음반 수집가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빽판의 전성시대’는 대중음악평론가인 저자가 2018년 서울 청계천 박물관에서 열었던 ‘빽판의 시대’ 전시를 발판으로 2년 정도 자료를 보강해 완성한 책이다. 한때 국내 음반 시장의 60%를 차지할 만큼 음악 산업의 성장에 적잖은 기여를 했지만, 불법이라 빽판 산업 자체에 대한 정보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관련 연구나 저작이 드문 현실에서 이 책의 등장은 한국 대중음악 산업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저자에 따르면 국내 빽판의 시작은 195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KBS 전속 1기 가수 옥두옥이 재미교포와 결혼 후 미국으로 건너가 발표한 음반을 불법 복제한 것. 한국전쟁 직후 궁핍했던 시기, 음반은 부유층과 일부 중산층만 향유할 수 있었던 사치품이었다. 춤바람 난 1950년대 사회상을 반영하듯 초창기 빽판의 상당수가 각종 사교춤을 위한 연주음반이었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1971년 성음제작소가 국내 최초로 라이선스 음반을 발매하기 전까진 사실상 빽판 제작사들이 해외 대중음악의 국내 유통을 책임졌다. 미도파, 지구, 오아시스 등 큰 규모의 정식 음반사까지 빽판을 제작했고, 심지어 정부로부터 납세필증을 받아 정식으로 유통했다는 사실은 당시 저작권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부족했는지 말해준다.
빽판 산업은 1970년대 들어 급속도로 팽창했다. 팝 음악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난 반면 정식으로 발매되는 음반은 많지 않았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나온 음반도 정부의 검열을 거치며 일부 곡들이 금지 판정을 받아 삭제되는 일이 허다했다. 상대적으로 고급스럽게 제작된 초기 빽판과 달리 1970년대 발매된 빽판은 대부분 커버가 단색으로 인쇄되고 종이질도 조악했으며 음질 또한 좋지 않았으나 값이 매우 저렴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아예 국내 발매가 금지된 일본 대중음악도 빽판을 통하면 들을 수 있었다.
빽판이 전성기를 누리면서 복제의 방식도 다양해졌다. 해외에서 들여온 정식 발매 음반을 복제하는 것은 물론, 복제판을 다시 복제하고 국내에서 발매된 라이선스 음반을 복제하는 경우도 있었다. 시장이 커지며 바카라, 보니M, 산타 에스메랄다의 앨범 등 일부 히트작은 100만장 이상 팔렸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양희은 김추자 등의 앨범은 금지곡으로 묶여 정식 유통이 막히자 빽판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저자는 이 같은 빽판의 역사를 시대별, 음악가별로 나눠 당시에 각광받았던 팝음악이 어떤 것이었는지 조명한다. 번안곡과 내한공연 등 한국과 연결고리를 찾아 소개하기도 하고, 우스꽝스러운 철자 오기를 모아 보여주기도 한다. 저자가 일일이 모아 직접 촬영한 4,000컷의 사진 자료만 봐도 빽판 산업의 흐름이 선명히 보인다. 국내 음반 산업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귀한 저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