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김부겸의 어떤 우아함

입력
2020.06.18 18:00
예의를 지키는 반박의 대가 이낙연
비하 않고 상대를 설득하는 김부겸
두 잠룡 당권 도전을 고대하는 이유

8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가 기대된다. 지난 총선 때 대권 도전을 선언한 김부겸 전 의원이 먼저 당 대표 출마의사를 밝혔다. 12개월째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1위인 이낙연 의원도 곧 출마를 공식화할 전망이다. 경쟁자인 우원식ㆍ홍영표 의원이 대선 주자의 당권 도전에 제동을 걸고 있지만, ‘미리 보는 대선후보 경선’이라는 바로 그 점이 흥행 포인트다.

 이 의원의 독보적 지지율은 총리 시절의 자산이다. 국회에서 야당 의원들의 거센 공격에도  그의 어조는 한치 흐트러짐 없이 점잖았다. 송곳 같은 팩트 폭격으로, 이기는 쪽은 총리였다. 거기에 반한 이들이 지금 ‘이낙연 대세’의 토대를 이룬다. 수차례 민주당 대변인을 할 때 그는 말꼬리 잡기식 논평을 싫어했고, 총리 시절 장ㆍ차관이 현안 파악이 안 돼 있으면 안건을 국무회의에 올리지 않고 되돌려 보냈다고 한다. 전남지사 시절 직무수행평가도 좋았다. 요점을 파악하는 좋은 머리, 엄한 기율로 상대를 휘어잡는 그는 토론장의 재사(才士)다. 신문기자였던 그는 동교동계의 영입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역경을 딛고 바닥부터 올라온 성공 스토리, 많은 이들을 감화시키는 꿈과 도전의 감동 스토리는 그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예를 갖춰 싸우는 저 우아한 전투력은 값진 매력이다. 저급한 말싸움 정치에 지친 국민들에게, 이제는 우아한 언변의 지도자가 필요한 때라는 생각을 심어줄 만하다.

김 전 의원은 전혀 다른 자산을 가졌다. 운동권 출신의 그는 대중연설에 능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온 거리의 투사(鬪士)다. 행정안전부 장관 시절 임기 마지막 날 밤까지 그는 산불 피해를 확인하고 대피 주민을 위로하며 현장을 지켰다. 보수의 심장 대구에서 민주당 기호를 달고 2012년 총선, 2014년 지방선거, 2016년 총선에 도전하며 그는 “야당도 찍어줘야 경쟁이 되고 그래야 대구가 발전한다”고 호소했다. 야유하는 유권자에게 “칠성시장 앞에 대형 마트 들어온다 할 때 (통합당은) 상인 여러분하고 안 싸워줬잖아예! 저희는 못난 야당이지만 곁에 있었잖아요. 얼굴도 안 보고 찍어주는 그런 선거, 언제까지 할낍니까?”라고 소리쳤다. 내 편 선동에 능한 정치인은 많지만, 남의 편을 설득할 줄 아는 정치인은 드물다. 그는 생각이 다른 이들을 무시하거나 비하하지 않는, 사람을 대하는 우아한 태도를 가졌다. ‘적진’에서 단련된 그 설득의 힘은 국론이 분열되거나 국가 위기가 닥칠 때 지도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당 대표 자리는 당내 기반이 허약한 이 의원이 대권으로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변곡점이다. 김 전 의원에게도 당내 세력을 다지고 국민 지지를 끌어올릴 기회다. 이런 내부자 시각을 벗어나 유권자 입장에서 이들의 도전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대단한 경력에도  이 의원의 정치력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그가 민감한 정치 현안에 해법을 제시하거나 갈등 상황을 헤쳐나가는 모습을 우리는 많이 보지 못했다. 그는 윤미향 사태가 불거지자 “엄중히 보고 있다”고 했고, 기본소득에 대해선 “논의할 때가 됐다”고 했다. 구체적 입장을 에둘러 피한 덕에 논란은 없었지만 책임지고 돌파하는 지도자인지 의구심을 남겼다. 김 전 의원도 지켜봐야 할 게 있다. 지역주의 타파라는 그의 도전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꿈이 소외당한 영남 민주화 세력의 한풀이로 끝났다는 평가가 있음을 떠올리면, 과연 김 전 의원이 생각하는 지역주의 타파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두 대선 주자가 민주당 대표를 놓고 겨루도록 하자. 대선 전초전으로 과열이 우려되고, 7개월 뒤 또 당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를 여는 것이 소모적이라는 반론도 있지만 대수롭지 않다고 본다. 경쟁자들의 유ㆍ불리는 어차피 국민 관심사가 아니다. 잠재력 있는 두 잠룡을 검증할 기회를 흘려 보내기는 아깝다. 외국에 나가고 토굴에 들어가는 잠행은 필요 없다. 이낙연, 김부겸의 어떤 우아함이 우리나라 정치에 득이 될  것인지 비교하고 고민할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논설위원



김희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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