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프랑스 남부 아비뇽 일대로 와이너리 투어를 다녀왔다. 도착한 다음 날부터 세찬 바람이 불었다. 책에서 읽은 미스트랄이었다. 나른한 봄날에 낯선 방문객을 환대하려는지 달리는 자동차가 휘청 흔들릴 정도였다.
남부 론 지방에 속하는 도시, 아비뇽에서 미스트랄을 뚫고 북쪽으로 향했다. 15㎞쯤 달려 샤토뇌프 뒤 파프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그곳은 마치 하얀 돌들이 주인인 마을 같았다. 흡사 ‘감자밭’처럼 보이는 ‘돌밭’이 실은 ‘포도밭’이었다. 가까이 가보니 돌들이 감자보다 두서너 배쯤 컸다. 이 둥근돌을 ‘갈레(Galet)’라고 한다. 세상에, 돌투성이 틈에서 포도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갈레는 낮 동안 햇볕의 온기를 품었다가 기온이 뚝 떨어지는 밤이 되면 그 온기로 포도나무를 품는다. 게다가 따가운 햇볕을 차단해 땅속 수분이 적당히 유지되게 돕는다. 고온건조한 지중해성 기후 지역인지라, 포도밭을 이불처럼 덮어주는 갈레가 없었다면 벌써 흙먼지만 날리는 땅이 됐을 게다.
미스트랄은 1년에 100일 이상을 시속 100㎞의 속도로 불어온다. 때로는 포도나무를 부러뜨리기도 하지만, 병충해는 물론이고 뜨거운 햇살에 포도가 지나치게 익는 걸 막아준다. 이 지역의 포도나무가 고블릿잔을 닮은 듯 키가 작은 이유이기도 하다.
갈레와 미스트랄. 이 둘은 마을 이름이자 와인 이름인 샤토뇌프 뒤 파프의 ‘테루아르’(포도 재배 자연 조건)다. 테루아르 탓인지 덕분인지, 포도나무들은 세월의 풍파를 이겨낸 표정으로 서 있었다. 희로애락의 감정을 분재로 만든다면 이런 모습일까. 그래서인지 이 지역 와인에선 은은한 흙 내음과 잘 익은 붉고 검은 과일 향과 여러 향신료의 향이 느껴진다.
서로 꼬이고 꼬인 생을 견디고 있는 포도나무들을 뒤로하고 마을 가운데 있는 언덕에 올랐다. 다 무너지고 한쪽 벽면만 남은 유적이 보였다. 교황 요한 22세 때 지어진 교황의 여름별장 터라고 했다.
왕권에 밀려 교황권이 약해진 14세기 초, 교황 클레멘스 5세는 프랑스 국왕 필립 4세의 압박에 못 이겨 교황청을 로마에서 아비뇽으로 옮겼다. 바로 아비뇽 유수다. 보르도 대주교 출신인 클레멘스 5세는 와이너리를 소유했을 만큼 와인을 좋아했다. 그는 이 작고 이름 없는 마을에 포도밭을 조성해 질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다. 뒤를 이은 교황 요한 22세도 그곳의 포도밭과 와인 양조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곧 이 마을은 프랑스 남부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 산지가 되고, ‘교황의 와인’은 ‘교황의 새로운 성’을 뜻하는 ‘샤토뇌프 뒤 파프(Chateauneuf du Pape)’라 불린다(줄여서 CDP라고 부르기도 한다). 샤토뇌프 뒤 파프는 이 지역의 테루아르에서 잘 자라는 최대 13가지 포도 품종(같은 품종이지만 포도나무의 클론을 분리하면 18가지)을 블렌딩해 만들 수 있다. 물론 단일 품종으로 만들어도 된다.
프랑스에는 1936년 만들어진 와인 원산지 보호 제도(AOC)가 있다. 그때 처음 AOC로 지정된 곳이 샤토뇌프 뒤 파프다. 1937년에는 샤토뇌프 뒤 파프 포도생산자연맹이 와인병에 교황의 티아라와 성 베드로의 두 열쇠를 양각한 ‘교황의 문장’을 새겨 넣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병을 자세히 살펴보면 와인마다 문장이 조금씩 다른 걸 알 수 있다. 포도를 직접 재배해 양조하는 와이너리에는 전통 문장을 사용하는 그룹과 ‘Mitrale’라고 부르는 병을 사용하는 그룹이 있다. 포도를 구매해 와인을 양조하고 유통하는 ‘네고시앙’의 문장도 다르다. 자기 가문의 문장을 쓰는 소수의 와이너리도 있다.
어느새 해질 무렵이 되자 미스트랄이 더 거세게 불어왔다. 온몸으로 바람을 느끼며 남쪽을 바라봤다. 아비뇽을 지날 때 지도에서 본 곳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샤토뇌프 뒤 파프에서 멀지 않은 곳, 아를에서 한때 살았지만 그 독한 압생트만 마신 고흐도 이 바람을 맞았겠다. 만만치 않았을 삶의 테루아르를 견디며 밤하늘에 매력적인 미스트랄을 그려 넣은 ‘별이 빛나는 밤’을 남겼으니 말이다. 그의 표정을 한 포도나무들도 바람 속에서 석양빛에 붉게 물들고 있었다. 역시 명작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고흐에게 샤토뇌프 뒤 파프를!
시대의창 대표ㆍ와인어드바이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