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가 3년간 본체만체한 ‘을의 눈물’

입력
2018.10.0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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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무(59)씨는 오전 11시부터 밤 12시까지 배달대행업체에서 오토바이 기사로 일한다. 매일 ‘업장’(배달대행을 맡기는 업소)에서 음식 등을 픽업해 고객에게 전해주고 건당 3,000원의 수수료를 챙긴다. 많을 때는 하루 40건 정도 배달한다. 오토바이 두 바퀴에 그의 아내와 아들의 생계가 달려있다.

그러나 사실 김씨는 3년 전만 해도 피자 프랜차이즈 ‘피자에땅’ 가맹점주였다. 2008년 12월 권리금 1억5,000만원을 주고 인천 구월점을 넘겨 받은 뒤 김씨 부부는 365일 연중무휴 하루 13시간을 꼬박 일했다. 그러나 월 매출 3,000만원을 찍어도 각종 기술료(로열티)와 임대료 등을 빼면 실제 몫은 300만원도 안 됐다. 그러던 중 ‘필수물품’이란 명목 아래 본사에서만 사야 했던 치즈와 도우(빵)이 시중보다 30~40% 비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더구나 치즈와 도우를 공급하는 업체는 본사 대표의 부인과 딸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문제의식을 가진 50여명의 점주들은 2014년 4월 ‘피자에땅 가맹점주협의회’를 발족했다. 인천 A점주 강성원(45)씨가 회장, 김씨가 부회장, 인천 B점주 권성훈(52)씨가 총무를 맡았다. 본사에 필수물품 ‘폭리’ 철폐 등을 요구했고 2015년 3월 공정위에도 신고했다.

그러나 본사와 공정위의 대응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신고 6개월 후 본사는 김씨에게 “(전 점주의 계약기간 3년을 포함해) 10년이 지났으니 나가달라”는 폐점 내용증명을 보냈다. 현행 가맹법은 최대 10년까지만 계약을 보장한다. 공정위도 2015년 말 필수물품 폭리 등 본사 ‘갑질’ 10개 혐의에 대해 모두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권 총무는 “3자대면 조사도 없이 신고 후 공정위에서 전화 한 통 온 뒤 무혐의가 났다”고 말했다. 권 총무는 이후 본사 압박이 거세져 2011년 1억2,000만원 들여 개점한 점포를 2016년 4월 4,000만원 받고 넘겨야 했다. 다만 이에 대해 권총무에게 점포를 인수한 현 점주는 "본사 압박이 아니라 자의에 의한 매각이었다"고 밝혀왔다. 강 회장도 2016년 말 ‘10년 폐점’ 통보를 받고 점포 문을 닫았다. 본사가 ‘노조’ 집행부를 다 날려버린 셈이다.

모든 것을 잃은 이들은 공정위에 다시 제소했다. 그로부터 2년 가까이 지난 7일 공정위는 ‘블랙리스트’ 점주의 매장을 집중 점검한 뒤 꼬투리를 잡아 계약해지 등 불이익을 준 피자에땅 본사에 과징금 15억원을 부과했다. 공정위는 “본사가 단체 활동을 이유로 점주에게 불이익을 준 행위를 적발한 첫 사례”라고 자화자찬 했다.

그러나 2015년 최초 신고 후 3년간 공정위가 ‘무성의ㆍ늑장’ 조사로 일관한 여파는 너무 컸다. 김 부회장은 “7년 동안 매장을 운영하며 2억원의 빚이 쌓인 탓에 강제 폐점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파산신청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공정위 문을 처음 두드린 2015년 공정위가 정말 제대로 사건을 처리했다면 폐점은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강 회장도 김 부회장처럼 배달기사로 일하고 있다. 권 총무는 폐점 후 아르바이트, 프리랜서 등 임시 일자리를 전전하고 있다.

권 총무는 “을(乙)인 점주들이 단체를 구성해 갑(甲)에 대한 협상력을 키울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해주면 본사 부조리의 90% 이상은 공정위가 개입할 필요도 없이 뿌리 뽑힐 것”이라고 말했다. 가맹점이 협의회 등 단체를 구성할 때 공정위가 신고증을 부여해 ‘대표성’을 주고, 본사가 이들 단체의 협의 요청을 정당한 이유 없이 거절하지 못하도록 하는 가맹법 개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김 부회장은 “3년여의 세월 동안 본사의 갑질에 맞서 덤비고 싸웠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폐점”이라며 “더 이상 이러한 불행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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