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는 지금 페미니즘 열공 중

입력
2017.09.24 20:00

서강대 “생리대 불안해” 대자보

중앙대 “젠더 과목 개설” 요구

경희대는 피임법 등 의사 특강

강남역 살인 등 보며 공론 부활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학생들은 5월 말부터 ‘젠더정치학’ 과목 개설을 학교 측에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한 학과 교수의 수업시간 여성혐오 공개 발언이 계기였다. 학생대표 정윤호(20)씨는 “사건 이후 학생들 사이에서 성과 관련한 각종 사건이 입에 오르기 시작했고 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공감 아래 페미니즘 관점에서 정치를 바라보는 수업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학교 측도 내년 1학기 강의에 관련 과목 개설을 목표로, 현재 구체적인 강의 내용과 강사 선임 문제 등을 따져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새 학기를 맞은 대학 캠퍼스 곳곳에서 페미니즘 운동이 한창이다. 학내 성추행 사건 등에 대한 문제 제기 수준을 넘어 일상에서 여성이 겪는 고충과 불편을 적극 공론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성혐오를 인식한 젊은 세대들이 ‘강남역 살인사건’ ‘생리대 파동’ 등을 겪으면서 1990년대 강력했던 학내 페미니즘 운동을 재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서강대 여성주의학회 ‘담다디’는 얼마 전 생리대 7개를 붙인 대자보로 학생들 눈길을 사로잡았다. 생리대 유해성 논란을 비판하겠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학회장 김의령(20)씨는 “일회용생리대 문제가 터지고 나서 이렇다 할 대안이 아직까지 제시되지 않는 현실을 인상적으로 비판하고자 일회용생리대를 붙였다”고 설명했다.

같은 학교 ‘서강연극회’는 21일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무대에 올렸다. 연극회 측은 “30대 한국 여성이 겪는 일상을 재현해 한국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 요소를 꼬집는 작품을 통해 여성회원 목소리를 대변하고 싶었다”며 “연습 과정에서 성평등 교육을 실시하고 그 내용을 대본에 포함했다”고 밝혔다. 연극은 23일까지 6차례에 걸쳐 관객들을 만났다.

‘여성의 몸’을 이야기하길 금기시하는 분위기도 타파하고 있다. 경희대 총여학생회는 27일 산부인과 의사를 초청해 그간 입 밖으로 내기 조심스러웠던 각종 피임법, 피임약 부작용, 성관계 시 주의사항, 현실적인 피임방법에 대해 논할 예정이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90년대 폭발했던 학내 페미니즘 운동이 2000년대 후퇴기를 겪은 뒤 다시 부활하고 있다”며 “’일베’로 상징되는 남성의 폭력을 10대 때 보고 겪은 학생들이 자신의 문제와 연관 짓고 목소리를 높여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글ㆍ사진=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손영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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