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休·味·樂(휴·미·락)

[휴·미·락] 아름다운 힘겨루기, 씨름

'동물의 왕국'이라는 TV 프로그램을 보면 동종(同種) 간에 싸우는 장면이 많다. 싸움의 주체는 주로 수컷이고, 싸움의 원인은 먹이 혹은 암컷을 차지하기 위함이다. 수컷들의 힘자랑은 본능이다. 모든 생물은 자신의 유전자를 세상에 남기려 한다. 가능한 한 좋은 후세를 만들기 위해서는 영양 상태가 좋아야 한다. 그리고 좋은 짝짓기 상대를 만나야 한다. 무리 내에서 힘센 수컷으로 자리해야 그 가능성이 커진다. 인간도 다르지 않다. 남성의 힘겨루기는 그 우위를 가리는 수단이다. 힘겨루기를 통해 남성성을 크게 드러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인간이 사는 곳에서는 지역의 특색에 맞는 힘겨루기가 있다.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힘겨루기는 씨름이다. 사료(史料)로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씨름은 '각저총(角觝塚)'이라 부르는 고구려 고분벽화이다. 각저는 씨름의 한자어이고 벽화 제작 추정 연대는 4세기 말이다. 그러므로 씨름은 최소 1,600년 전부터 우리 민족이 즐긴 운동이다. 조선시대의 화폭을 통해서도 씨름 풍속을 엿볼 수 있다. 보물 527호인 단원 김홍도의 '씨름도'는 선명한 씨름판 상황을 생중계하는 듯하다. 조선 시대의 씨름은 중앙과 지방에서 쓰임새가 달랐다. 중앙의 씨름 목적은 군인들의 무예와 호신술이었다. 지방에서는 농촌공동체를 위한 행사였다. 씨름은 단오, 백중, 추석 등에 행하는 전통 세시풍속이었다. 지역마다 기후대가 달랐기에 농사 절기에 따라 씨름을 즐긴 시기도 달랐다. 한수 이북 지역은 단오(端午), 기호지방은 백중(百中), 영호남은 추석(秋夕)에 즐겼다. 씨름 외에 전통 무예로는 수박(手搏)과 태권도(跆拳道) 등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종목 이름 자체가 한자다. 씨름은 종목 이름뿐 아니라 관련한 모든 용어가 우리말이다. 우선 씨름의 유일한 도구인 '샅바'가 있다. 샅바는 허리와 다리를 둘러 묶어서 손잡이로 쓰는 천이다. 두 다리가 갈라진 사이의 허벅지 어름을 이르는 ‘샅’에서 나온 말이다. 씨름 기술도 모두 우리말이다. 앞무릎치기 등 손기술 10개, 덮걸이 등 다리기술 7개, 호미걸이 등 발기술 8개, 왼배지기 등 허리기술 7개, 들어잡채기 등 들기술 9개, 뿌려치기 등 혼합기술 14개가 모두 그렇다. 씨름은 우리 민족의 세시풍속으로서 전통의 가치가 크다. 게다가 관련한 모든 용어가 순우리말이다. 그래서 언어 측면의 계승 가치도 크다. 이래저래 씨름은 현세의 가슴에서 후세의 가슴으로 전달해야 할 전통문화다.

초선의원이 말한다

내란의 밤과 다시 만난 세계

12월 14일, 대통령 윤석열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다. 그날 이후 오늘까지 수천 통의 문자를 받았다. 많은 시민들이 ‘이번만큼 국회가 일을 잘 해낸 적이 없었다’며 응원과 격려의 문자를 보내주셨다. 사실 지금껏 나도 몰랐다. 내가 이렇게 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이번만큼 뼈저리게 실감한 적은 없었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한 두 번째 표결이 있던 지난 14일, 수백만 명의 인파가 영하의 추위 속에서 국회 본회의를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수천 명의 시위대가 서울 거리로 나가 응원봉을 들고 K팝에 맞춰 흥겹게 춤을 추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한국인들은 나라의 위기가 있을 때마다 각자 집에서 가장 밝은 것을 들고나온다고 한다. 이번 시위에서 들고나온 것은 아이돌 응원봉이었다. 딱 8년 만이다. 양초 대신 응원봉을 든 10대와 20대가 가득했고, 거리는 마치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흥이 있었지만, 모인 사람들의 마음은 하나였다. 우리나라를 더 이상 망가뜨리게 두고 볼 수는 없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내란의 밤, 그날 이후부터 12월 14일 대통령 윤석열의 탄핵소추의 밤까지, 11일 동안 국회는 비상이었다. 언제든 제2의 계엄이 선포될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 의원들은 국회의사당 본관에서 30분 이내의 거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 기간 동안 밤낮없이 24시간 동안 국회의 모든 출입구를 지켜주셨던 시민들이 계셨다. 또한 국회를 침탈한 계엄군 병사들도 총칼로 무장을 했지만, 끝내 국민을 해치지 않으려 했던 망설임이 있었다. 이들도 누군가의 아들이자, 아버지일 것이다. 그들이 배워온 민주의식이 그들의 총칼에 망설임과 주저함이 되었다. 1980년 5월의 광주가 2024년 12월 대한민국을 구했다. 시민들이 국회를 침탈하는 계엄군의 총부리를 막아서고, 민주주의의 길목을 지켜주셨다. 맨몸으로 장갑차를 막고, 경찰들의 바리케이드를 막아서, 국회의원들이 국회에 들어갈 수 있도록 싸워 주셨다. 나도 국회 출입구에서 경찰에 막혔으나, 시민들이 경찰들을 설득해서 간신히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전 세계에서 놀라워했던 여러 지점들이 있다. 첫째, 우리 국민이 비상계엄을 고작 155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해제할 수 있었던 것, 둘째, 계엄 해제 이후 11일 만에 내란 수괴 윤석열을 탄핵소추 의결한 것, 셋째, 우리의 집회가 놀라울 정도로 즐겁고 흥겨운 콘서트 장처럼 밝은 분위기였다는 것, 집회 이후에 거리에 쓰레기 하나 남지 않을 정도로 시민의식이 높다는 것이었다. 내란은 실패로 끝났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서 우리 국민들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국민 여러분 스스로가 대한민국의 빛이 되어, 소중한 것을 지키려 거리로 나온 것이다. 가장 소중한 빛은 서로가 서로를 응원하고 존중하는, 평화와 사랑과 연대의 빛, 민주주의를 지키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 된 빛이었다. K팝의 합창으로 세대와 성별과 계층을 뛰어넘어 연대해서 승리한 경험은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헌정 질서가 위태로울 때마다 분연히 일어나 국헌을 바로 세우고 민주주의를 지켜낸 것은 항상 국민들이었다. 우리 국민들과 함께 ‘다시 만난 세계’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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