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산 오늘의 운세] 2024년 12월 20일

36년 멀리서 기쁜 소식이 들려온다. 48년 매매 관련 이야기에 머리가 아프다. 60년 여유를 부리다가 돈을 탕진한다. 72년 경사가 생기니 마음이 들뜬다. 84년 짜증이 났다가 기분이 좋아진다. 96년 금전 관련 말다툼이 생긴다. 37년 답답한 마음이 오후부터 사라진다. 49년 집안이 평온한 날이다. 61년 근심이 사라지고 운수가 대통하다. 73년 소원을 성취한다. 85년 소개받은 사람과 좋은 인연이 되도록 노력해본다. 97년 쓸데없는 욕심은 금물이다. 38년 일이 더디게 흘러가지만 마음은 편하다. 50년 복록수가 들어온다. 62년 명예와 금전운이 들어온다. 74년 건강운이 좋아지니 대길하다. 86년 소득이 늘어나고 목돈이 모인다. 98년 행사 날짜를 정하니 모든 준비가 끝난다. 39년 행운이 있으니 소원을 성취한다. 51년 금전 문제가 풀린다. 63년 화가 나도 참아야 좋은 운이 찾아온다. 75년 베풀면 좋은 운기가 온다. 87년 운이 풀리니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99년 일이 뜻대로 되니 기분이 상쾌하다. 40년 건강운이 다시 찾아든다. 52년 보기 드문 운이 찾아온다. 64년 지연되던 금전 관계가 풀리기 시작한다. 76년 운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한다. 88년 얻는 것이 많아지는 날이다. 00년 운이 풀리니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41년 길한 운이 들어오는 날이다. 53년 걱정했던 일이 수습되니 마음이 편하다. 65년 집안에 근심이 서서히 사라진다. 77년 운이 열리니 후한 대접을 받는다. 89년 승진운이 찾아오는 날이다. 01년 바라던 일이 뜻대로 순행한다. 42년 만사가 대길하고 집안이 화평하다. 54년 뜻대로 안 되던 일을 성취한다. 66년 부러워할 것이 없다. 78년 무엇이든 열심히 하면 얻을 수 있다. 90년 막혔던 재물운이 돌아온다. 02년 기다렸던 일이 해결되니 마음이 편하다. 43년 집안에 우환과 질고가 생기니 병문안을 미룬다. 55년 일이 풀리니 운수가 대통한다. 67년 뜻을 이루니 일이 풀린다. 79년 실속이 있으니 풍요롭다. 91년 마음을 비우면 유리하다. 03년 가는 곳마다 횡재수가 따른다. 32년 우환과 질고가 더디게 사라진다. 44년 불길한 운이 사라지니 몸이 편해진다. 56년 매사에 번영과 발전이 있다. 68년 근심으로 인한 구설수가 사라진다. 80년 불길한 운이 사라지니 편해진다. 92년 얻기 힘든 운도 따른다. 33년 겹경사가 생기는 하루다. 45년 귀인이 찾아오니 만사가 길하다. 57년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69년 움직이지 않던 재물운이 풀린다. 81년 귀한 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온다. 93년 근심이 없어지고 새로운 운이 온다. 34년 문서로 인해 자금이 생긴다. 46년 밝은 햇살이 집안을 비춘다. 58년 마른 땅에 단비가 내리니 근심이 사라진다. 70년 뜻을 손쉽게 달성한다. 82년 지연되던 일에 운수가 대통하다. 94년 예상치 못하게 일이 성사된다. 35년 남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 47년 건강이 좋아지니 근심이 사라진다. 59년 뜻대로 풀리지 않으니 신경을 쓴다. 71년 평소에 갈고 닦은 실력을 발휘한다. 83년 집안에 경사가 생긴다. 95년 시험운이 좋아지니 최선을 다한다.

[백운산 오늘의 운세] 2024년 12월 21일

36년 매사가 꼬이고 지연된다. 48년 감언이설에 넘어가면 안 된다. 60년 재물운이 동쪽과 서쪽에서 온다. 72년 관재수와 손재수가 사라지니 운수가 대통한다. 84년 뜻밖의 행운이 온다. 96년 좌절하지 말고 최선을 다한다. 37년 운이 풀리니 자신감을 가진다. 49년 불평과 불만을 떨쳐내니 마음이 편하다. 61년 최선을 다하니 일이 순조롭게 풀린다. 73년 승진 소식을 듣는다. 85년 남쪽과 북쪽의 운이 막혀 있으니 조심한다. 97년 기회가 찾아온다. 38년 좋은 일이 있으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50년 남의 일에 간섭하면 안 된다. 62년 일이 뜻대로 안 풀리니 답답하다. 74년 몸살감기가 호전된다. 86년 우울하고 착잡한 마음을 떨쳐낸다. 98년 필요한 것을 얻으니 마음이 놓인다. 39년 지인들과 충분히 상의하고 결정한다. 51년 불평이 많아지면 화병만 나니 마음을 비운다. 63년 평판이 좋아지는 날이다. 75년 새로운 것을 발명하니 기립 박수를 받는다. 87년 소원을 성취한다. 99년 답답한 마음이 풀린다. 40년 건강이 좋아지니 마음이 흐뭇하다. 52년 생각지 않게 일이 꼬이니 마음을 비운다. 64년 행운이 따르니 기분이 좋다. 76년 열심히 하자고 다짐한다. 88년 오후부터 안 풀리던 일이 풀린다. 00년 노력해도 결과가 약하다. 41년 좋아하는 옷을 선물받는다. 53년 방해꾼이 나타나도 일은 제대로 성사된다. 65년 일이 꼬이니 고생만 한다. 77년 시작도 하지 않고 좌절하기엔 시간만 아깝다. 89년 원하는 일에 운이 따른다. 01년 좋은 사람을 소개받는다. 42년 문자로 좋은 소식을 받는다. 54년 심신이 갈수록 좋아지는 날이다. 66년 방해자로 인해 중요한 일을 그르친다. 78년 기쁘고 즐거운 날이다. 90년 바라던 일에 운이 안 풀린다. 02년 지인을 만나 어려움을 해소하는 날이다. 43년 반복 치료로 효과를 본다. 55년 기쁜 일이 생긴다. 67년 맨발로 뛰어 일을 어렵게 성사시킨다. 79년 지혜를 발휘해 안 되는 일을 성사시킨다. 91년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한다. 03년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32년 겹경사가 있고 운수가 대통한다. 44년 소원을 성취한다. 56년 걱정하던 일이 점차 나아진다. 68년 다칠 수도 있으니 비탈길과 건널목에서 조심한다. 80년 환영을 받으니 기쁘다. 92년 짜증 났던 일은 잊고 새롭게 출발한다. 33년 문서와 관련된 기쁜 소식을 듣는다. 45년 문서 매매운이 매우 약하다. 57년 소원을 성취한다. 69년 걱정했던 일이 다시 좋아진다. 81년 재물운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93년 마음이 불편하면 책상 위치를 바꿔본다. 34년 어수선했던 심신이 안정된다. 46년 내가 하는 일만 집중한다. 58년 금전운이 풀리니 의기양양하다. 70년 부부가 화합하니 웃음꽃이 활짝 핀다. 82년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94년 노력을 게을리하니 운이 약해진다. 35년 오래된 문서로 인해 재물을 만진다. 47년 최선을 다하니 어려움도 잘 넘어간다. 59년 피나는 노력으로 좋은 수확을 올린다. 71년 금전 운이 풀린다. 83년 꼬였던 일이 풀린다. 95년 짜증 나는 일이 생겨도 모범을 보인다.

싸움도 식후경이다... 5·18 주먹밥부터 탄핵 집회 선결제까지

이름 때문일까? 주먹밥은 한국인의 전투식량이었다. 기원은 분명치 않지만 기록은 430여 년 전인 임진왜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선조 때 학자 이식의 시문집 '택당집'에는 중전 의인왕후의 일화가 담겨 있다. 일본이 침략해 선조가 먼저 피난을 떠나고 의인왕후가 뒤따랐는데, 평안북도 의주 인근에서 쉬어가던 중 주먹밥으로 허기를 달랬다는 이야기이다. 우리 일상의 쌀인 단립종 자포니카의 특성을 생각해 보면 밥을 손으로 뭉쳐 주먹밥을 만드는 행위는 매우 자연스럽다. 찰기라 일컫는 밥알의 서로 달라붙는 특성은 아밀로펙틴이라는 전분 때문이다. 아밀로펙틴은 밥알에 물리력을 가하면, 즉 누르거나 치대면 활성화된다. 덕분에 치대고 뭉치기는 원래 그릇에 담아야 편히 먹을 수 있는 밥에 휴대성을 불어넣는 가장 손쉬운 요령이었다. 주먹밥은 밥 자체를 제대로 차려 먹지 못하는 시급한 상황에 요긴하게 쓰여왔다. 전투를 위한 식량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말이다. 문자 그대로의 전투뿐만 아니라, 생사가 걸린 상황이라면 홀연히 나서 제 몫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농번기 서민들의 새참이었다. 우리는 불과 50년 전에도 보릿고개를 겪고 나무껍질을 씹어야 할 만큼 어렵게 살았다. 따라서 농사는 생존을 위한 전투였고 새참인 주먹밥은 전투식량이었다. 이름이 직관적으로 말해주듯 주먹밥은 아주 간단히 만들 수 있다. 그저 밥을 적당량 쥐어 손으로 뭉치면 끝인데, 그게 전부는 아니다. 우리의 식문화는 밥에 간을 하지 않고 반찬으로 맛을 더하는 형식이다. 따라서 휴대성과 간편함을 위해 반찬을 제외한다면 밥에 최소한의 맛을 불어넣어줘야만 하고, 소금물과 참기름 혹은 들기름이 이 역할을 맡았다. 손에 이들을 묻히고 밥을 뭉쳐 누르면 자연스레 맛이 배어 한결 나은 전투식량으로 거듭났다. 주먹밥은 6·25 전쟁에서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 충실한 전투식량으로서 진가를 발휘했다. 북한의 남침에 맞서 우리는 처절하게 싸워야 했고 그런 와중에서도, 아니 그런 와중이기에 밥은 더 철저하게 챙겨 먹어야만 했다. 인터넷에 '주먹밥'을 검색해 보시라. 병사들이 전투가 벌어지지 않을 때 함께 주먹밥을 빚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후방에서 쌀을 지원받아 주먹밥을 빚었는데, 이때 종류가 굉장히 중요했다. 밥이 반드시 뭉쳐져야 휴대가 가능했기에, 안남미 말고 끈기 있는 쌀을 보내달라고 당부했다는 이야기가 오늘까지 전해 내려온다. 사진 속 어른 주먹보다 크게 뭉쳐진 밥이 전쟁의 현실을 시사하는 가운데, 병사들은 이렇게 만든 주먹밥을 겨울이면 입김으로 녹여 먹어 주린 배를 달래가며 싸웠다. 주먹밥은 또 다른 향토 음식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전북 전주의 옛 남밖장(현재 남부시장)은 동트기 전 새벽마다 나무를 팔러 나온 나무꾼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나무꾼들은 대부분 전주 인근 지역에 살았으니 이른 새벽길을 떠나야 아침나절에 남밖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따라서 아침을 먹을 만한 여유가 없어 대신 주먹밥을 싸 들고 길을 나섰다. 서두른 덕분에 아침 제 시각에 도착해 나무를 다 팔고 나면 나무꾼들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밥을 먹었는데 남밖장의 주요 메뉴는 콩나물국이었다. 행상에게 주먹밥을 건네면 먹기 좋도록 따뜻한 콩나물국을 여러 번 끼얹고 따라 내 데워주었다. 바로 이 토렴의 과정 속에서 남부시장식(혹은 토렴식) 전주 콩나물국밥이 탄생했다. 오늘날 남부시장식은 직화에 끓여 내는 '삼백집'식과 더불어 전주 콩나물국밥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다. 이처럼 주먹밥이 전라도의 향토 음식이었음을 감안하면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매우 요긴한 전투식량으로 제 몫을 해냈다는 사실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1980년 5월 18일의 광주 민주화운동 이야기로, 2021년 승인을 받은 '5·18 민주화운동 교과서'에는 당시 주먹밥의 활약상이 자세히 실려 있다. 계엄군이 시 외곽을 차단해 갈수록 생필품이 부족해졌고, 특히 주식인 쌀이 가장 먼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상황에서 어느 누구도 사재기를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집의 쌀을 가져와 길가에 솥을 내걸고 시민군을 위해 밥을 지었다. 그리고 주먹밥을 만들어 시민군에게 제공했다. 특히 대인, 양동, 서방시장의 어머니 상인들이 '주먹밥 어머니'로 맹활약했다. 역할을 나눠 몇몇 어머니는 밥을 짓고 주먹밥을 만들었고, 다른 어머니들은 주먹밥과 음료수를 날라 금남로를 오가는 시민군 트럭에 올려주었다. 그렇기에 광주에서 연대와 나눔의 상징인 주먹밥은 2019년 광주광역시에 의해 시의 대표 음식으로 선정되어 '광주주먹밥'이라는 브랜드로 뻗어나가고 있다. 다양한 주먹밥의 레시피를 전파하고 메뉴를 개발하며 전문점을 지정하는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 음식과 맛을 통해 역사를 기억하려는 시도를 다각적으로 펼치고 있다. 시에서 전문 판매점과 취급점을 심사 및 선정하고 간판을 비롯해 식기, 앞치마, 도시락 용기 등을 무료 지원한다. 하지만 일상에서 주먹밥은 점차 삼각김밥으로 대체되었다. 1990년대 초반 본격적으로 편의점이 진출하면서 변화가 찾아왔다. 납작하면서 각져 휴대성이 조금 더 좋은 한편, 갖가지 맛의 소를 품어 선택의 폭이 넓은 삼각김밥이 대세로 자리를 잡아버렸다. 그렇다고 주먹밥의 의미, 주먹밥 정신이 아예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최근 본의 아니게 확인할 수 있었다. 대통령의 12·3 불법계엄 탓이었다. 인터넷으로 소식이 퍼져나가자 시민들이 마치 의견을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삽시간에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모여 계엄군과 경찰의 진입을 최대한 막았다. 한편 국회의원 190명은 월담 등의 필사적인 행동으로 집결해 민주주의적 표결로 계엄을 무효화시켰다. 여의도에 모인 시민들은 바로 민주 시위를 벌였고 재빠르게 어묵과 닭꼬치 행상이 등장, 갑작스러운 한밤의 움직임에 춥고 주린 이들을 달래주었다. 그렇게 본격적인 평화 시위가 벌어지면서 '금강산도 식후경' 문화와 주먹밥 정신이 어우러져 돌연 '선결제'라는 거대하고도 다채로운 움직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시작은 따뜻한 커피였다. 시위 장소 인근 카페에 미리 돈을 지불해 이름이나 별명을 대면 커피를 찾아 마실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다. 이어 점차 품목이 다양해지면서 떡이나 김밥 등을 넘어 김치찌개나 국밥 같은 본격적인 음식으로 메뉴도 다양해졌다. 무명의 시민들로부터 시작한 선결제 열풍은 연예인의 참여까지 이끌어 냈고, 덕분에 민주 시위에 참여한 이들이 추위와 허기를 좀 더 효과적으로 달랠 수 있었다. 탄핵이 국회에서 가결되어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기까지, 12일의 기간 동안 선결제 열풍은 여의도를 뜨겁게 달구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5·18 민주화운동의 주먹밥 정신이 깔려 있었다. 시위 현장의 선결제 정보를 모아 'X(옛 트위터)'에 알렸던 계정 '시위도 밥먹고(@torchmapkr)'는 "1980년 8월 18일 사심 없이 주먹밥을 쥐던 손길이 2024년 12월 14일 여의도에서 재현된 것"이라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바로 지난주에 일어난 역사를 쓰고 있는 마음은 벅차면서도 참담하다. 실질적이든 상징적이든 주먹밥이 필요한 투쟁의 순간이 다시 찾아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한편 갑자기 등장한 선결제 문화도 일부 업주들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인해 보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주먹밥의 역사가 민주적, 평화적으로 마무리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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