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休·味·樂(휴·미·락)

남겨진 송편이 떡볶이도, 와플도 된다

요즘은 떡을 직접 만드는 집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송편만은 다르다. 아직도 추석 즈음이면 온 가족이 모여 송편을 빚는 풍경이 종종 목격된다. 별 다른 도구 없이 두 손으로 빚다보니 여러 얘기가 돌았다. 처녀가 송편을 예쁘게 빚으면 좋은 신랑을 만나고, 시집을 갔다면 예쁜 딸을 낳는다는 말이 있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를 어린아이조차도 고사리 손으로 토닥토닥 송편 빚기에 몰두했다. 어르신은 어르신대로 연륜이 녹아든 손 위에서 쌍둥이 같은 송편들이 척척 나왔다. 그야말로 송편은 예쁜 모양이 관건이었다. 양손으로 토닥토닥 빚은 작은 달 송편은 그 모양이 꼭 반달을 닮았다. 과거 농경사회에서 달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달의 변화를 관찰하면서 시간을 예측했고 농사의 중대한 방향을 결정지었기 때문. 이렇듯 한 해 농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게 도와준 달과 하늘에게 감사의 의미로 달 모양을 닮은 송편을 빚게 되었다. 그렇다면 왜 하필 반달일까. 이야기는 백제 마지막 왕 '의자왕' 일화에서 시작된다. 656년 의자왕은 간밤에 흉흉한 꿈을 꿨다. 불길한 도깨비불이 나와 '백제가 망한다'라고 외쳤다. 잠에서 깬 뒤 도깨비불이 사라진 자리의 땅을 파봤다. 그랬더니 '백제는 둥근 달이고 신라는 반달이다'라고 쓰인 거북이 등껍질이 나왔다. 이에 무당은 백제는 달이 찼으니 이제 기울 것이고 반대로 신라는 앞으로 더 융성할 것이라 해석했다. 의자왕은 분노하여 그 자리에서 무당을 죽여버렸다. 그러나 결국 무당의 말이 맞았다. 시간이 흐른 뒤 백제는 멸망했고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기 때문이다. 이를 지켜본 백성들은 반달이 보름달보다 더 나은 미래를 상징한다고 여겼다. 그 때부터 송편을 반달 모양으로 빚기 시작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송편 속에 그득한 콩, 밤, 깨에도 숨겨진 의미가 있다. 이들은 땅에 촘촘하게 뿌린 씨를 나타낸다. 빈틈없이 찬 송편의 속처럼 이듬해에도 풍년이 들기를 기원했던 것. 작은 송편 한 알에는 농민들의 땀과 정성, 감사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아마도 송편은 손 위에서 빚을 수 있는 가장 크고 빛나는 달이 아닐까. 사계절 내내 즐겨 먹었던 송편 과거 우리 민족은 여러 종류의 송편을 크고 작은 기념일마다 챙겨 먹었다. '노비송편'이란 조선시대 농사철 시작을 기념하는 중화절(음력 2월 1일)에 먹었던 송편이다. 한 해의 농사를 잘 부탁하는 당부의 의미로 노비들에게 나이수대로 나눠주곤 했다. '오색송편'은 오행, 오덕, 오미의 뜻을 담아 만물의 조화를 추구했다. 이름대로 5가지 색을 물들여 어여쁘게 빚었다. 아이가 서당에서 어려운 책을 한 권씩 마칠 때마다 축하와 격려의 의미로도 송편을 마련했다. 책례시에 감사의 의미로 주변에 돌리던 '통과의례송편'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추석 때 먹는 송편이 바로 '오려송편'이다. '오려'는 '올벼'의 옛말로 제철보다 일찍 여문 벼를 뜻한다. 송편은 달 외에도 볍씨의 모양과 똑 닮았다. 추석에 풍년을 기원하며 볍씨를 닮은 송편을 먹었던 것.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사계절 내내 송편을 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금은 주로 추석에 먹고 남은 송편이 냉동실에 들어가 사계절 내내 바깥출입을 기다린다. 아무리 촉촉하게 데우더라도 처음의 맛과 식감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법. 이럴 땐 한 번 더 조리과정을 거쳐 이색적인 송편 요리로 즐겨보는 건 어떨까. 가장 인기 있는 송편 요리는 역시 떡볶이다. 거부하기 어려운 매콤달콤한 양념 덕분일까, 아니면 기름진 명절 음식을 먹은 뒤 칼칼한 음식이 끌리는 현상일까. 취향에 따라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넣은 양념을 준비한다. 여기에 가래떡 대신에 송편을 넣으면 속이 든든한 떡볶이로 즐길 수 있다. 최신 문물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바삭한 식감을 극대화해주는 와플기계이다. 와플 기계가 없다고 실망하지 말자. 후라이팬에서 납작하게 눌러구워도 꽤나 바삭한 식감을 살릴 수 있다. 여기에 꿀, 조청, 흑설탕, 시나몬가루 등 취향에 따라 토핑을 올려주면 달콤한 디저트로 변신한다. '단짠'의 맛을 살린 송편강정도 있다. 간장, 다진 마늘, 통깨, 올리고당, 참기름, 물을 섞은 양념장을 팬 위에서 지글지글 익힌다. 농도가 걸쭉해지면 송편을 넣고 양념을 코팅하듯 입힌다. 다진 견과류를 듬뿍 뿌려서 마무리하면 색다른 맛의 송편강정이 완성된다. 추석이 지나면 차갑게 식을 송편 걱정은 이제 잊어버리자. 딱딱해진 송편에 새 숨결을 불어넣을 방법은 다양하다. 과거에는 책 한 권만 떼어도 축하와 감사의 의미로 송편을 먹었다는데, 우리도 크고 작은 축하할 일을 만들어 사계절 내내 송편요리를 즐겨보는 건 어떨까.

초선의원이 말한다

국회의원이 되고, 비로소 알게 된 것들

22대 국회가 개원한 지 3개월이 지났다. 치열했던 4월을 지나 뜨거웠던 여름을 정면으로 통과해서 어느새 가을의 초입이다. 나의 2024년은 정말 많은 일들이 짧은 시간 안에 집약되어 폭발적으로 발생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내 생애에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상상조차 못했던 일들이 폭발적으로 벌어졌다. 선거운동 기간은 내 몸의 에너지를 모두 쓰고도 좀 더 끌어내야만 했던, 별의 일생에서 에너지를 모두 다 쓰고 블랙홀로 산화할 것 같은 처절한 고통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무사히 통과해서 여의도에 입성하고, 이제 겨우 조금씩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고 있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까지 알지 못했다. 국회의원이 얼마나 부지런해야 하는지 말이다. 지역구에서 어르신들은 내 손을 부여잡고, 국회에 가면 싸우지 말고 일 잘하라고 당부하셨다. 일반인이 보기에 국회의원은 늘 쌈박질만 하고, 하는 일 없이 월급만 많이 받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바로는 국회의원은 정말 부지런해야 할 수 있는 직업이다. 새벽부터 오밤중까지 종일 수많은 회의에 참석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법안을 준비하고, 틈나는 대로 지역구 주민들께 인사를 드려야 한다. 국회의원이 되기 위한 첫 번째 자질은 뭐니 뭐니 해도 체력이다. 또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는 이렇게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직업인 줄 미처 몰랐다. 나는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이자, 예산결산위원회 위원이다. 과학기술, 정보통신, 방송, 예산, 결산 등 공부해야 할 분야가 차고 넘친다. 상임위에서 다루어지는 많은 주제들과 법안들에 대해서 공부를 해야 하고, 인사 청문회에 올라온 자료를 살펴야 하고, 산더미같이 쌓인 예산, 결산 자료를 분석해야 한다. 국회란 기본적으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주장을 관철시켜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겉으론 싸우는 것으로 보이는 게 당연하다. 서로 다른 생각을 말로 풀어내고, 때론 부딪히고, 때론 양보하고 타협하는 일이 늘 일어나는 곳이다. 싸우더라도 잘 싸워야 한다. 내가 정치인으로 삶의 궤도를 변경하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주변의 염려가 있었다. 평생 연구만 했던 과학자가 험난한 정치판에서 견딜 수 있을까? 그런데 의외로 과학자와 정치인이 비슷한 점이 있다. 과학자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일에 익숙한 사람이다.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법안을 만드는 데도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리고,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여기서 꼭 필요한 것은 지치지 않고 끊임없는 반복해서 도전하는 일이다. 인공위성을 만들 때도 내가 만든 장비가 한 번에 성공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늘 실패하고, 다시 시도한다. 실패에서 얻은 교훈으로 조금씩 나아지면서 다시 시도하는 일을 계속 반복한다. 과학자는 성공할 때까지 끊임없이 반복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전세사기특별법이 내가 원하는 '선구제 후회수' 등의 내용을 모두 포함한 상태로 법률이 될 때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첫술에 배부르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다. 늘 그래왔듯이 실패하더라도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나서 조금 더 개선된 방법으로 다시 시도할 수 있다. 일단 성공하면 그때까지의 모든 일은 성공을 위한 '과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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