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년 만의 정부 해산 사태로 정국 혼란이 이어지고 있는 프랑스의 신용등급이 강등됐다. 의회의 하원 불신임 등 '정치적 분열'이 주된 이유로 꼽혔다. 불법 계엄과 대통령 탄핵 사태에도 신용등급에 변화가 없는 한국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14일(현지시간) 프랑스의 장기 신용등급을 기존 Aa2에서 한 단계 낮은 Aa3로 낮췄다고 밝혔다. 이는 독일 호주 등이 받은 최고 등급(Aaa)과 비교하면 3단계 낮은 등급이며, 한국(Aa2)보다도 낮다. 앞서 지난 5월 또 다른 신평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프랑스 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한 단계 낮춘 데다, 10월엔 피치도 프랑스에 대해 부정적 전망을 발표한 적이 있다.
이달 4일 미셸 바르니에 총리 내각 불신임안이 하원에서 가결되면서 프랑스에서는 62년 만에 정부가 해산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올해 9월 바르니에 총리가 취임한 뒤 고작 3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다. 바르니에 정부는 프랑스의 고질적 재정 적자를 줄이자는 취지로 약 600억 유로(약 90조 원) 상당의 긴축을 핵심으로 하는 내년도 예산안을 제출했는데, 원내 1당인 좌파연합 신민중전선(NFP)과 원내 3당 극우 국민연합(RN)이 이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자리에서 쫓겨났다. 중도우파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의회 다수를 차지한 극좌파와 극우파를 배제한 채 내각 구성을 고집하면서 프랑스 정국은 사실상 교착 상태에 빠졌다.
무디스의 이번 발표는 마크롱 대통령이 13일 중도우파 모뎀(민주주의 운동)당 지도자 프랑수아 바이루를 올해 4번째 총리로 지명한 직후 나왔다. 바이루 총리 내각이 연말까지 내년도 예산안을 마련해 의회를 설득하지 않으면 당장 프랑스 정부는 '셧다운'(일시 업무정지) 상태에 돌입하게 된다.
무디스는 바이루 총리가 꾸리는 내각이 프랑스의 고질적인 재정 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무디스는 성명을 통해 "프랑스 재정이 정치적 분열로 상당히 약화할 것이라는 우리의 견해를 반영한 조치"라며 "새 내각이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재정 적자 규모를 줄일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매우 낮다"고 설명했다.
반면 12.3 불법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을 겪고 있는 한국에 대해서는 글로벌 신평사들이 계속해서 안정적인 평가를 유지하고 있다. 무디스(Aa2), S&P(AA), 피치(AA-) 모두 한국의 신용등급을 바꾸지 않고 있으며, 최근 한국 정부와 만난 자리에서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은 여전히 안정적이며 이번 사건을 통해 제도적 강인함과 회복력을 체감했다"고 평가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