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돌아가서 (불법계엄 선포 및 내란 사태) 상황을 주의 깊게 살펴보려고 합니다."
스웨덴에서 일주일 넘게 진행된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일정이 12일(현지시간) '노벨 낭독의 밤' 행사 참여로 모두 마무리됐다. 세계적 문인 반열에 올랐고 한국인 및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타이틀도 거머쥐었지만, 그는 시상식 등 다양한 부대 행사가 이어진 '노벨 주간'(5~12일)을 오롯이 즐길 수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12·3 불법계엄 사태와 그 후폭풍을 묻는 질문 앞에 계속 서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는 12·3 불법계엄 이전의 마지막 비상계엄 시기의 비극,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뤘다는 점에서 그 역시 만감이 교차했을 법하다. 그러나 한강 작가는 시민들의 용기가 민주주의를 지켜냈다며 "끔찍하다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밖에서 보는 것처럼 절망적 상황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분노와 좌절 속에서도 '희망의 빛'을 찾으려 몸부림치는, 그의 작품 세계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한마디였다.
'노벨 낭독의 밤'은 12일 스웨덴 스톡홀름 왕립드라마극장에서 열렸다. 노벨 주간 전체 행사 중 가장 마지막에 개최됐다는 점에서, 한강 작가가 대미를 장식한 셈이다. 극장 내 720석 규모 공연장을 빈틈없이 메운 청중은 현지 번역가 유키코 듀크와의 대담에 나선 한강 작가의 얘기를 숨죽인 채 경청했다. 영어로 건네진 질문에 한강 작가는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답변했다.
첫 질문은 '민주주의를 훼손하려는 12·3 불법계엄 사태 탓에 한국을 떠나 스톡홀름으로 향하는 길이 얼마나 끔찍했느냐'는 것이었다. 한강 작가는 노벨 주간 동안 워낙 바빠 관련 뉴스를 미처 다 확인하지 못했다면서도 "'끔찍할 것 같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끔찍하지는 않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시민들이 맨몸으로 (계엄령에 동원된) 장갑차 앞에 서 있고, 맨주먹으로 군인들을 껴안으며 말린 모습들이 깊은 감동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일 기자회견 때 밝힌 견해를 스웨덴인이 대부분이었던 이날 청중을 위해 거듭 전한 것이다.
시민들의 용기 배경에는 '소년이 온다'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해석에 한강 작가는 "과장된 평가"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그대로 두면 상황이 얼마나 나빠질 수 있는지 알기 때문에 모두가 걱정과 경각심을 갖고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시위 현장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서 자신의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 모습이 담긴 사진을 봤다며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독재자의 딸'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2년 대선 후보가 된 사실이 '소년이 온다'의 집필 동기가 됐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여러 동기가 있는데 그것도 하나의 동기가 될 수 있겠다"고 답했다.
이날 행사에선 스웨덴어로 번역된 한강 작가의 작품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흰' 등에 대한 낭독도 이뤄졌다. 아직 스웨덴어로 번역되지 않은 '희랍어 시간'은 한강 작가가 직접 낭독했다. 사전에 안내되지 않았던 '깜짝 이벤트'였다. "정점에 이른 언어는 바로 그 순간부터, 더디고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며 좀더 사용하기 편한 형태로 변화해 갑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쇠퇴이고 타락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진전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겁니다." 이 소설은 실어증을 앓는 여자와 시력을 잃어 가는 남자의 관계를 그린 것으로, 그의 작품 중 "유일한 사랑 이야기"(한강 작가의 표현)다.
한강 작가는 이제 일상으로 돌아간다.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제 과거를 많이 돌아보게 됐고 내가 어디쯤 있고 어디에서 출발해 여기까지 왔는지 '좌표'를 파악하게 됐다"며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 조용히, 열심히 신작을 쓸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