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구두가 좋니, 흙투성이 신발이 좋니

입력
2024.12.13 13:00
13면
안나 파슈키에비츠 글·카시아 발렌티노비츠 그림, '왼쪽이와 오른쪽'

신발장 앞에 놓인 흙투성이 신발 한 켤레. 신발 주인 마지아는 모험을 즐기고 물웅덩이를 좋아하는 장난꾸러기여서 신발은 흙으로 범벅이 되기 일쑤다. 한 쌍으로 매 순간 함께하는 왼쪽 신발과 오른쪽 신발은 자신들의 모습을 놓고 투닥거린다. 주인의 산책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왼쪽이와 달리 오른쪽이는 늘 더러운 자신의 모습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신발장에 모셔져 있는 파란 구두를 부러워한다.

정작 신발장에서 빛나던 파란 구두는 한숨을 내쉰다. "난 비에 촉촉이 젖은 땅을 밟을 때 기분을 알고 싶어." "자갈길을 한 시간 넘게 걸을 때 밑창이 아프다는 느낌이 뭔지도 알고 싶어." 이 말을 듣던 왼쪽이는 슬며시 웃는다. 빗속을 뛰고 자갈길을 걷는 것이 얼마나 짜릿한 모험인지를 떠올리면서. 처음엔 "말도 안 돼"라고 발끈하던 오른쪽이도 왼쪽이와 했던 모험을 떠올리며 말한다. "만약 우리가 내일 산책을 나갈 수 있다면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 거 같기도 해."

그림책 '왼쪽이와 오른쪽'의 신발 한 쌍은 다른 기준으로 살아가는 두 사람을 은유한다. 방 안에 갇힌 귀한 명품 구두 인생과 매일 다른 세상을 탐험할 수 있는 흙투성이 신발 인생 중 무엇이 더 행복하다 섣불리 말할 수 없다. 분명한 건 내게 주어진 것이 행복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 모든 것이 불만족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펼치기 좋은 그림책이다. 비 오는 날 물웅덩이를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왼쪽이의 천진무구한 표정에서 생각보다 쉽게 힌트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2019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된 책이다.


손효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