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보고 알아" "사전 지시"…전례 없는 軍 '각자도생' 폭로전

입력
2024.12.1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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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인지 시점, 체포 지시, 선관위 침투
사령관·참모 증언 엇갈려... 기습 폭로도
검찰, 계엄 전후 사실관계 재구성 총력
진술 뒷받침할 객관적 물증 확보 주력

"대통령이 직접 전화해 '문 부수고 국회의원을 끌어내라' 지시했다. 사람들이 무수히 다치고 죽을 수도 있어서 이동 중지시켜…" (곽종근 전 육군특수전사령관)

"사령관이 '국회의원 150명 넘으면 안 되니 막으라'는 상부 지시 전파했다." (김현태 707특수임무단장)

'12·3 불법계엄 사태'에 연루된 군 주요 인사들이 전례 없는 '각자도생' 폭로전을 이어가고 있다. 계엄이 해제된 직후 국회 출석, 야당 의원과의 면담, 언론 인터뷰 등 형식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각종 증언을 쏟아내고 있지만, 엇갈리는 주장도 적지 않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는 군 인사들의 진술에만 의존하지 않고 객관적 증거를 통해 계엄 전후 상황을 재구성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틀 전 대기 지시" 사전모의 정황

가장 큰 쟁점은 ①이번 불법계엄 사태에 깊숙이 관여한 군 간부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언제 알았는지다. 이들은 계엄 해제 다음 날인 지난 5일 더불어민주당 국방위 소속 의원들과의 면담에서 "TV를 보고 알았다"며 사전모의 의혹에 대해 꼬리 자르기에 나섰다. 곽종근 전 사령관과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은 '비상계엄 선포 장면이 생중계된 뒤 상황을 알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직속 부하들의 말은 달랐다. 10일 국회 국방위 긴급 현안질의는 성토의 장이 됐다. 이경민 방첩사 참모장(현 방첩사령관 직무대리)은 "(계엄 선포 이틀 전인) 1일부터 간부들에게 대기 지시가 있었다. 당일 오전에도 북한 (오물)풍선 도발을 이유로 간부들에게 음주를 자제하고 통신 대기를 철저히 하라는 (방첩사의) 지시가 있었다"고 말했다.

사령관 3명은 '제 살길 찾기'에 나선 모양새다. 여 전 사령관은 10일 검찰에 출석해 피의자 조사를 받으면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며칠 전부터 독대 자리에서 계엄 필요성을 시사하는 말을 했다"면서도 "구체적인 계획은 사전에 몰랐다"고 진술했다. 이날 국회에 나간 곽 전 사령관도 '김 전 장관의 사전 임무 지시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12월 1일 (계엄 이틀 전) 국회, 선관위 3곳, 민주당사, 여론조사 꽃 등 6곳을 확보하라는 지시를 비화폰으로 받았다"고 말했다. 곽 전 사령관은 전날 검찰 참고인 조사에선 "관련자들이 말을 맞춘 느낌이 들어 이를 진술하지 않았다"고 했다. 두 사령관은 참모들의 증언으로 '사전 인지 정황'이 짙어지자, 당시 상황을 실토함으로써 윗선으로 책임을 돌리고 있다.

"의원들 끄집어내" 尹 지시 하달됐나

계엄 선포 직후 사령관과 참모들의 기억도 엇갈린다. ②국회의원 체포 명령에 대한 지시에 대해 곽 전 사령관은 10일 국방위 긴급질의장에서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 뒤 두 번째 통화에서 '국회 내에 있는 인원들,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국회의원을 끄집어내라, 의결 정족수가 아직 안 됐다'는 지시를 내렸다"면서도, 이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유혈 사태를 우려해 하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 현장 지휘관들 주장은 정반대다. 김현태 707특임단장은 같은 날 국회에서 "곽 전 사령관이 '의원이 150명이 되면 안 되니 막으라'고 전화로 지시했다"고 증언했으며, 이상현 전 제1공수특전여단장도 "(곽 전 사령관이) 지시했다"고 주장하며 눈물을 보였다. 곽 전 사령관은 그러자 "(내가 아니라) 김 전 장관의 구두 지시가 지휘통제실 마이크로 전파된 것 같다"고 해명했다.

③선거관리위원회 청사 침투 병력의 사전 준비 여부에 대해서도 두 사령관(정보사·방첩사)은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문상호 전 국군정보사령관은 "3일 오전 김 전 장관이 '1개팀 편성해 대기해라. 당일 야간 임무 줄 수 있다'며 과천(선관위 청사 부근)에 밤 9시쯤 대기 준비하라'고 지시했다"고 했다. 그러나 선관위로 병력을 보낸 여 전 사령관은 9일 입장문에서 "방첩사는 계엄령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 부대 출동은 새벽 1시 넘어서였고 국회, 선관위 근처까지 가다가 복귀했다"고 말했다. 계엄사령관에 임명된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국회와 선관위에 계엄군을 배치한 이유를 모른다"고 선을 그었다. 계엄 상황도 선포 직후 알았다는 입장이다.

결국 누구 말이 맞는지 정확한 사실관계 규명은 수사기관의 몫이다. 검찰이 각각의 진술을 뒷받침할 물증을 비교해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다. 검찰은 이날 경기 이천시 방첩사와 여 전 사령관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고, 방첩사에도 사흘째 수사인력을 보내 자료를 확보하고 있다.


강지수 기자
장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