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연구개발(R&D)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를 폐지하기 위한 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지난 5월 윤석열 대통령이 국가 경쟁력 확보를 위한 R&D 사업의 조기 착수를 약속하며 내놓은 방안이지만, 불법계엄 사태 후폭풍으로 정국이 격랑에 휩싸이면서 국회 논의 자체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부는 10일 국무회의를 열고 R&D 분야 예타 폐지 이행을 위한 국가재정법과 과학기술기본법 개정안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국가연구개발사업’과 ‘연구개발 수행에 필수적인 건설공사’를 예타 대상에서 제외하고, 각 사업에 이를 대체할 ‘맞춤형 심사제도’를 실시한다는 내용이다.
정부가 R&D 사업 예타 폐지를 추진한 건 예타 소요 기간이 평균 2년 이상이라 급변하는 기술 환경에 대응이 어렵다는 이유 때문이다. 미래 수요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기반으로 타당성을 평가하는 예타 제도가 R&D 분야를 평가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과학기술계의 의견도 반영됐다. 정부가 특정 분야의 예타 폐지를 추진하는 것은 이례적인데, 지난해 R&D 예산 삭감 사태로 반발한 과학기술계를 달래기 위한 ‘당근책’으로 내놨다는 시선도 적지 않다.
법안이 시행되면 기초⸱원천연구 등 대규모 연구형 R&D 사업의 경우 기획 완성도를 제고하기 위한 ‘사전기획점검제’를 거친 뒤 바로 다음해 예산 요구를 할 수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를 통해 기존 예타 제도 대비 약 2년 이상 추진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형 가속기, 우주발사체 등의 구축형 R&D 사업은 실패하면 매몰 비용이 막대한 만큼 사업 유형과 관리 난이도에 따라 점검하는 ‘맞춤형 심사제도’가 도입된다. 단순 장비도입형 사업은 신속 심사를 적용해 빠르게 사업을 추진한다는 설명이다.
이번 개정안은 불법계엄 사태 여파로 국무회의 상정조차 무산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으나 이날 가까스로 정부 문턱을 넘었다. 과기정통부는 이달 중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면 내년 상반기에 국회 심사를 통과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그러면 내년 하반기부터는 새로운 제도가 시행될 수 있을 거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정국 혼란에 국회 처리는커녕 논의조차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선 "현 시점에서 정책 법안은 논의 우선 순위가 되기 어려울 것”이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