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미국 대선을 앞두고 실리콘밸리로 상징되는 미국 기술업계가 5,600억 원 상당을 공화당과 민주당 양 진영에 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최대 규모로, 기술업계가 미국 선거에 미치는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8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선거위원회(FEC)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실리콘밸리 인사들이 11·5 대선과 관련해 쏟아부은 기부금이 3억9,410만 달러(약 5,66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세계 1위 부호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몫으로, 머스크는 2억4,300만 달러(약 3,490억 원) 상당을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 측에 기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머스크는 이번 대선 기간 트럼프 당선자를 물심양면 지원했으며, 대선 이후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부효율부 수장에 지명됐다.
머스크의 기부액이 워낙 큰 탓에 상대적으로 눈에 덜 띄기는 하지만, 실리콘밸리의 다른 유명인사들 역시 적잖은 액수를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 쪽에 기부했다. 페이스북 공동창업자인 더스틴 모스코비츠는 민주당 후보였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캠프에 5,110만 달러(약 733억 원)를 기부했고, 해리스의 열혈 지지자였던 링크드인 공동창업자 리드 호프먼도 1,700만 달러(약 244억 원)를 기부했다. 트럼프 측에는 벤처캐피털업체 앤드리슨호로비츠 설립자 마크 앤드리슨(550만 달러)과 와츠앱 설립자 얀 쿰(510만 달러)이 주요 기부자로 이름을 올렸다.
가디언은 그러나 "FEC 자료는 기술 산업이 워싱턴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부분적으로만 보여줄 뿐"이라고 짚었다. 익명으로 기부한 사람들의 액수는 반영되지 않았다는 의미로, 이를 포함하면 실리콘밸리의 기부금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령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는 해리스 캠프에 약 5,000만 달러(약 717억 원)를 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비공개 기부를 허용하는 비영리단체를 통했기 때문에 FEC 데이터에는 잡히지 않았다.
가디언은 FEC 자료를 통해서 드러난 기부액만으로도 올해 기술업계의 기부금이 역대 최대를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만큼 기술업계가 대선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는 뜻이다. 미국 대선은 흔히 '돈이 지배하는 게임'이라고 일컬을 만큼 수십조 원에 이르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서, 기부금 액수가 클수록 후보자 측에 미치는 영향력은 확대될 수밖에 없다. 머스크가 대선 이후 트럼프 측의 핵심 실세로 떠오른 것은 그가 트럼프에게 거금을 기부한 것과 무관치 않다.
"이번 대선에서는 특히 가상화폐 업계 관계자와 지지자 등이 가상화폐 규제를 막기 위해 기부금을 집중적으로 투입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실제로 트럼프 당선자는 차기 행정부의 백악관 '가상화폐 차르'로 데이비드 색스 전 페이팔 최고운영책임자를 지명하는 등 가상화폐 친화 행보를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