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노벨상박물관에 기증한 소장품은 옥색 빛이 감도는 '작은 찻잔'이었다. 평소 차를 즐겨 마시는 것으로 알려진 한강 작가는 이 찻잔을 '작별하지 않는다'(2021년 9월 출간) 집필 당시 애용했다고 밝혔다.
한강 작가는 5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노벨상박물관에서 진행된 '노벨상 수상자 소장품 기증 행사'에서 해당 찻잔을 전달했다. 기증품은 이 박물관에 영구 전시된다.
한강 작가는 미리 작성해둔 메모를 통해 찻잔에 담긴 사연을 설명했다. 한강 작가는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는 동안 몇 개의 루틴을 지키려고 노력했다(늘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1.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 가장 맑은 정신으로 전날까지 쓴 소설의 다음을 이어 쓰기. 2. 당시 살던 집 근처의 천변을 하루 한 번 이상 걷기. 3. 보통 녹차 잎을 우리는 찻주전자에 홍차 잎을 넣어 우린 다음 책상으로 돌아갈 때마다 한 잔씩만 마시기"라고 덧붙였다. 이어 "그렇게 하루에 예닐곱 번, 이 작은 잔의 푸르스름한 안쪽을 들여다보는 일이 당시 내 생활의 중심이었다"고 메모를 끝맺었다.
한강 작가는 기자회견에서 "그 찻잔이 계속해서 저를 (글을 쓰도록) 책상으로 돌아가게 하는 주문 같은 것이어서, 저의 글쓰기에 아주 친밀한 부분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기증했다"고 설명했다. 또 "그 찻잔을 사용할 때는 열심히 했다"며 "열심히 했던 때의 저의 사물을 기증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한강 작가는 다도 애호가로 알려져 있다. 지난 10월 10일 노벨문학상 선정 소식을 알리는 노벨위원회 관계자와 첫 전화 통화에서도 한강 작가는 "아들과 차를 마시면서 오늘 밤 조용히 축하하고 싶다"고 말했다.
찻잔 기증은 노벨상 수상자가 개인적 의미를 가진 물품을 기증하는 전통을 따른 것이다. 2000년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과거 이희호 여사가 보낸 손편지와 털신, 죄수복을 기증했다.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1981년 내란음모죄로 사형 선고를 받고 복역할 당시 건네받거나 사용했던 물품이었다.
아울러 한강 작가는 이날 박물관 안에 있는 의자에 친필 서명도 남겼다. 이러한 서명 방식은 노벨상 제정 100주년인 2001년 시작된 전통으로, 일종의 '노벨상 수상자 특별 방명록'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