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정부 붕괴에 따른 '동반 퇴진' 요구를 일축했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사태 책임을 야당에 돌렸다. 프랑스 정국 혼란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5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저녁 대국민 연설에서 "미셸 마르니에 총리가 (내년도 정부 예산안 처리 관련 논의에서) 모든 의회 그룹에 양보했음에도 정부가 불신임을 받았다"며 "극우와 극좌가 반(反)공화주의 전선을 만들어 프랑스 정부를 무너뜨리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언급한 '정부 불신임'은 전날 야당의 정부 불신임안 발의 및 의회 통과를 의미한다. 전날 좌파 연합인 신민중전선(NFP)은 불신임안을 의회에 제출했고 프랑스 하원은 재석 574명(정원 577명), 찬성 331표로 해당 안건을 가결했다. 극우 국민연합(RN)과 극좌 NFP가 정부 불신임 주장에 동조한 결과였다. 이로써 지난 9월 취임한 바르니에 총리는 물러나게 됐고, 야권은 마크롱 대통령 동반 퇴진까지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자신은 이번 불신임 사태 책임자가 아니라며 야당에 비판의 화살을 돌렸다. 마크롱 대통령은 "일부가 나를 비난하고 싶은 유혹을 받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그러나 나는 다른 사람들(야당)의 책임을 절대 떠안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간 서로 대립해 온 극좌·극우가 모두 이번 불신임안 처리를 동의한 점을 거론하며 "그들은 자신을 뽑은 유권자를 모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국 안정을 위해서라도 사퇴할 수 없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이미 지난 6월 한 차례 조기 총선을 치른 상황에서 대통령마저 물러나면 초유의 정치적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취지다. 프랑스 헌법상 대통령은 일 년에 한 차례만 의회 해산권을 행사할 수 있기에 마크롱 대통령이 또다시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열어 자신에 대한 국민 신임을 확인하는 절차를 밟을 수도 없다. 마크롱 대통령은 "나의 책임은 국가의 연속성을 보호하는 것"이라며 "민주적으로 위임 받은 임기 5년을 끝까지 행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향후 국정 운영을 위한 절차 진행도 예고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며칠 내로 후임 총리를 임명하겠다"며 "공공서비스를 위해 12월 중순 이전에 (예산 관련) 특별법을 의회에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특별법은 내년도 예산안 처리가 지연되는 상황에서 공공 행정 기능을 뒷받침하기 위한 긴급 법안으로, 이마저 부결되면 프랑스 정부 기능이 마비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의회 과반이 이 특별법을 채택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협조를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