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슈퍼컴퓨터의 핵심 기술인 가속기용 칩을 개발했다. 해당 기술이 상용화되면 한국은 세계 5번째 슈퍼컴 제조국에 이름을 올릴 걸로 보인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30일 시스템온칩(SoC) 형태의 ‘K-AB21′ 가속기용 칩 개발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시스템온칩은 컴퓨터 시스템에서 필요한 다양한 기능을 하나의 칩에 통합한 반도체를 말한다. 가속기용 칩은 빠른 연산이 필요한 슈퍼컴퓨터의 운영을 위한 핵심 요소다. 이번 가속기 칩 성능은 소수점 52번째 자리까지 8테라플롭스(TFlops)의 속도로 고정밀 계산을 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한다. 테라플롭스는 초당 1조 번의 연산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현재 슈퍼컴퓨터를 자체 생산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중국·일본·프랑스 등 4개국뿐이다. 이들 국가들은 범용 가속기를 도입, 연산 성능을 높이는 데 주력 중이다. 범용 가속기는 슈퍼컴퓨터의 연산 성능을 향상하기 위해 다양한 작업에 활용할 수 있는 가속 장치로, 그래픽 처리 장치(GPU)와 텐서 처리 장치(TPU) 등이 있다.
문제는 범용 가속기는 주로 인공지능(AI)에서 필요한 낮은 정밀도의 연산에 초점을 맞춰, 정확한 과학 계산이나 엔지니어링 시뮬레이션 등에는 효율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이번 연구팀은 고정밀도 슈퍼컴퓨터 응용을 가속하기 위한 핵심 기술인 슈퍼컴 가속기 칩과 소프트웨어 등을 자체 개발했다. 가속기 칩 내에는 약 100억 개의 트랜지스터가 들어 있는데, 국내에서 개발한 것 중 최대 개수다. 연구진이 개발한 가속기 칩의 크기는 77㎜ x 67㎜으로, 12나노급 미세공정으로 제작됐다.
ETRI는 다음 달 미국에서 개최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슈퍼컴퓨팅 기술전시회에 가속기 칩의 기능을 시연할 계획이다. 연구팀은 가속기 칩 시장이 신경망처리장치(NPU), 지능처리장치(IPU) 등으로 다변화하는 중이어서, 이번에 개발한 가속기 칩이 대규모·고성능 슈퍼컴퓨터 틈새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조일연 ETRI 인공지능컴퓨팅 연구소장은 “이번 성과는 동일 공정 수준에서 세계 최고의 제품보다 우수한 것으로 평가된다"며 "칩부터 시스템까지 향후 한국 슈퍼컴퓨터 기반 생태계 조성과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