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영월 민간인 희생 사건' 피해자 유족들에게 국가 책임을 인정한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국가에 배상책임이 있는지 유족이 입증해야 하지만 오래전 사건이라 객관적 증거가 존재하기 어렵다는 사정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부장 정회일)는 강원 영월군 군경 민간인 학살 사건 피해자 유족 2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5월 23일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양측 모두 항소하지 않아 6월 14일 확정됐다. 국가가 배상해야 할 액수는 총 2억8,000여만 원이다. 재판부는 "국가 소속 공무원이 대한청년단 등 우익 단체와 함께 좌익 활동을 했다는 의심만으로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망인들을 살해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했다.
원고는 1949년 8월 영월군에서 우익 단체 대한청년단과 국민방위군에게 좌익 혐의로 끌려가 살해당한 피해자들의 유족이다. 유족들은 이 사건으로 할아버지와 어머니, 여동생을 잃었다. 2022년 7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이들을 해당 사건 희생자라고 판단하고,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망인들은 빨갱이로 몰려 죽었다고 들었다. (군경이) 좌익 명단이 있다면서 마을 사람들을 해코지했다" "부대원들이 집에 불을 놓아 집이 타버렸다" 등의 목격자와 유족 진술이 바탕이 됐다. 당시 38선이 그어지며 남북한으로 갈라진 강원 지역은 좌우익 간 대립이 심했다.
재판부도 유족 측이 일관적으로 진술한 데 대해 신빙성이 높다고 봤다. 그러면서 "민간인이 국가권력에 의해 집단적이고 조직적으로 희생된 경우, 사안의 성격상 관련 기록 등 객관적인 증거가 존재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사회·정치적 혼란기에 발생했고 장기간의 세월이 경과해 증거가 소실됐을 가능성도 크다"면서 "원고들에게 구체적인 사실관계의 증명을 더 엄격히 요구할 경우 그 증명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정도 고려돼야 한다"고 짚었다. 민사소송 특성상 원고가 엄격한 입증 책임을 지는데, 과거 국가 폭력에 의한 사건에선 이를 완화해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다.
1949년 유족들이 죽음을 목격했다는 걸 근거로, 배상을 청구할 기간이 지났다는 국가 측 주장도 법원은 물리쳤다. 국가배상법 등에 따르면 피해자나 법정대리인이 손해나 가해자를 알게 된 날로부터 3년이 지나면 배상을 청구할 수 없는데, 법원은 이 소멸시효를 계산할 기준(기산점)은 진실화해위가 진실규명 결정을 내린 2022년 7월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국가의) 행위는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할 의무를 위반한 행위일 뿐만 아니라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 생명권, 적법 절차에 따라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을 침해한 것"이라면서 국가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배상 액수는 유족이 겪었을 정신적 고통과 그 이후 이어졌을 사회적 편견, 경제적 어려움, 유사 사건과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 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