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무리한 의대 증원이 결국 의료 대란을 초래하고 말았다. 우리나라는 의대 졸업생을 매년 3,000명씩 배출하며, 우리보다 인구가 7배인 미국은 2만1,500명을, 인구가 약 2배인 일본은 9,500명을 배출한다. 미국은 연수와 이민 등으로 외국 의대를 나온 의사도 있어 의사 공급은 이보다는 많지만 국토가 넓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의사가 부족하다는 말은 어느 나라에나 있으나, 우리의 경우는 의사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기보다는 필요한 분야에서 일하는 의사가 부족한 것이 특징이다. 필수 의료에 종사하는 의사의 보수가 건보 비급여 분야에서 일하는 의사의 수입에 비해 턱없이 낮은 것도 큰 문제다.
정부는 확실한 근거도 없이 ‘의대 정원을 내년부터 4,500명으로 늘리겠다’고 해서 의료 대란을 촉발시켰다. 미국의 경우로 환산한다면 별안간 의대생 1만 명을 더 뽑겠다는 것과 같다. 만일에 어느 미국 정치인이 이런 주장을 한다면 정신이 나갔다는 말을 들을 것이다. 의대는 교수진, 시설 등 인가 기준이 엄격해서 함부로 만들거나 증원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의대 인가와 사후 평가는 의사협회와 의대협의회가 구성한 위원회가 하는 것이지 정치인이나 관료가 주무르는 것이 아니다.
별안간 의대 정원을 50% 늘리는 경우는 동서고금에 전무후무한 일이다. 무더기로 늘어나는 학생을 수용할 건물은 대충 짓는다고 해도 누가 가르치느냐는 문제가 나오니까 보건복지부와 교육부는 아무 병원에서나 4년 동안 일한 의사는 연구업적이 없어도 의대 교수가 될 수 있도록 규정을 고치겠다고 한다. 그것도 웃기는 일이지만 이 판국에 별안간 의대 교수를 하겠다고 나서는 의사가 있을지 의문이다. 오히려 우리나라 의료를 이끌어온 훌륭한 교수들이 환멸을 느끼고 대학을 떠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크다. 의대생이 늘어나면 해부 실습을 할 시신이 부족할 것이라고 하니까 해부용 시신을 정부가 관리해서 여러 대학에서 몇 번씩 사용토록 하겠다고 한다. 해부용 시신을 재활용하겠다는 것인데, 천륜(天倫)을 거역하는 이런 발상을 하는 자체가 놀랍다.
의사가 부족한 특별한 상황을 일반화해 의사가 부족하다고 몰아붙이는 과정에서 정부와 일부 언론은 의대 교수와 전공의의 자존심을 훼손했다. 필수 의료를 담당하는 대학병원의 구성원인 이들은 상대적으로 열악한 보수를 받으면서 힘든 일을 해 왔다. 그럼에도 정부와 일부 언론은 이들이 마치 의료 발전을 가로막았다는 식으로 매도했다. 우리 의료의 앞날을 떠맡아야 할 전공의들은 정부의 이런 태도에 반발해서 병원 현장을 떠나버렸고, 의대 교수들도 하나둘씩 대학을 떠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정부의 독선에 반발하는 의대생들이 수업을 거부함에 따라 이들은 전원 유급할 것으로 보인다. 선행 과목을 이수하지 않으면 다음 과목을 공부할 수 없는 의대의 특성 때문이다. 의대 교육은 재택으로 대충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황한 교육부는 수업 일수를 줄이는 등 편법을 동원해서 이들을 억지로 진급시키려고 하나 의대생들은 그럴 생각이 없다. 의대생이 전원 유급하면 내년은 의사 공급이 끊기며 재학생들이 그대로 있는 의대는 신입생을 뽑을 수 없다. 1968년 한 해 동안 점거 시위에 시달렸던 도쿄대는 전교생을 유급시키고 1969년도 입시를 하지 않았던 선례도 있다. 내년에 의대 입시가 없으면 의대를 가려고 했던 고3 학생은 물론이고 고2, 고1 학생들까지 영향을 받는다. 의원 내각제 정부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면 내각은 당연히 붕괴한다. 대통령제라고 해서 사정이 크게 다르지도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