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고향, 제 관할, 제가 지킵니다"… 발로 뛰며 '홍수 지도' 만든 경찰관

입력
2024.07.19 04:30
10면
['동작구 토박이' 사당지구대 하진수 경사]
2년 전 수도권 극한 호우 침수 직접 경험
사당 주민 위해 침수우려 지도 손수 제작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했다. 2년 전 이맘때쯤, 서울 동작구 일대에 115년 만에 가장 많은 비(하루 강수량 기준 381.5㎜)가 내렸다. 서울 동작경찰서 사당지구대 하진수(29) 경사 부모가 살던 상도3동의 다세대 주택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서울경찰청 기동단 소속이었던 그는 근무를 마치고 헐레벌떡 집으로 달려갔다. "제가 갔을 땐 반지하는 이미 잠겼었고요. 저희 집도 침수된 물건들을 두 줄로 높이 쌓아놨더라고요. 전쟁이 난 줄 알았습니다."

17일 사당지구대에서 만난 하 경사가 악몽 같았던 그날 밤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는 올해 1월 이곳으로 발령 났다. '동작구 토박이'인 하 경사는 사당지구대가 관할하는 사당1·4·5동이 지대가 낮은 탓에 비가 올 때마다 물난리가 난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해 잘 알았다. 순찰과 구조 활동에 활용할 수 있는 '관내 침수우려 지도'를 직접 만들어보겠다는 아이디어를 냈고, 명정훈 사당지구대장이 "곧장 시작해 보자"며 지원했다.

올여름도 예측하기 힘든 '극한 호우'가 예정됐기에 시간이 많지 않았다. 먼저 '데이터'부터 모아야 했다. 환경부에서 제작하는 '도시 침수지도'를 토대로 하려 했으나, 하필 사당동 정보가 빠져 있었다. 하 경사는 포기하지 않고 '발품' '손품'을 팔았다. 서울신문·서울대 학부생 6명이 만든 '침수 우려 반지하 지도'를 참고해 관할 내 상습 침수 지역을 추렸고, 직접 순찰하면서 알게 된 산사태 취약 지역과 노후 건물, 장기간 방치된 공사 현장 등을 표시했다. 완성된 지도엔 폭우가 쏟아질 경우 예측되는 위험 지역이 빼곡하게 담겨 있어 이를 토대로 순찰 경로를 정하거나 미리 거점 근무를 서는 등 바로 대응이 가능하다.

"2년 전 악몽, 주민들 또 겪지 않도록"

유관 기관과의 협업도 하 경사 제안으로 시작됐다. 위험 지역을 정하고 관리하는 건 지방자치단체의 몫이고, 경찰은 협조 요청을 받아 구조 활동 등을 지원하지만 그는 거꾸로 지자체에 먼저 전화를 걸어 "도와줄 게 없겠냐"고 물었다. 동작구청 요청에 따라 '스마트 빗물받이 시스템'을 구청과 함께 점검 중이다. 사당1동에 있는 2,200개소 빗물받이에 담배꽁초 등 오물을 투기해 빗물 순환을 방해하는 사람을 발견하면 즉각 단속하는 식이다.

퇴근 후에도 자료를 찾고, 익숙하지도 않은 툴을 활용해 지도를 만드는 건 사실 '가욋일'이다. 왜 사서 고생을 할까. 하 경사는 "2년 전 피해를 동작구 구민들이 또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며 "경찰관으로서 뭘 할 수 있을지 알아보다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이어 "요즘 지구대장님과 돌아다니면서 빗물받이가 잘 있는지 확인하려고 땅바닥만 본다"고 웃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경찰청 '인명구조 우수사례' 표창 대상자에도 이름을 올렸다. 소감을 묻자 그는 "침수우려 지도는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가 중요한데 실제 상황이 닥쳐봐야 알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런 상황은 절대 안 왔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최현빈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