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선충은 1㎜ 내외의 실처럼 생긴 선충(線蟲)이다. 소나무가 재선충에 걸리면 100% 말라죽는다. 치료약이 있고 조기 발견하면 거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에이즈나 암보다 소나무에는 무서운 병이다.
재선충병이 전국적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 2022년까지 감염목 5만 그루가 넘는 ‘극심’ 지역이 단 한 곳도 없었지만, 지난해엔 경북 포항 경주 안동시, 경남 밀양시 등 4곳이나 됐다. 특히 우리나라 최대 송이 주산지인 영덕은 초비상 상태다. 울진 금강송군락지와 백두대간 재선충 확산을 저지할 마지노선이기 때문이다.
7일 경북도 등에 따르면 1988년 부산 금정산에서 처음 발견된 재선충 감염 소나무는 2014년 218만 그루로 정점을 찍었다가 이후 감소했다. 그러나 2022년 38만 그루까지 줄었던 감염목은 지난해 107만 그루로 폭증했다. 올해는 90만 그루로 소폭 줄었지만 안심하기엔 이르다는 지적이다. 감염목 주변의 우려목을 더하면 186만 그루나 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여파로 방제예산이 뒷전으로 밀린 데다 기후변화로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 활동 기간이 늘었기 때문이다.
감염목은 지역별로 분류하면 포항, 경주, 안동 등 경북지역이 39만9,000그루로 가장 많고, 밀양 등 경남이 21만 그루로 2번째다. 이에 경북도는 올해 '극심' 지역인 포항, 경주, 구미는 물론 ‘중’으로 분류되는 영덕 등까지 총 612억 원을 투입하는 대대적인 방제작전을 펴고 있다.
도는 전국 최대 송이버섯 산지인 영덕 지역의 추이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 산림조합 수매량은 지난해 32톤으로 전국(153톤)의 20%나 된다. 현지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김석환 영덕산림조합 지도과장은 “영덕송이는 대게와 함께 지역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소중한 자원"이라며 “주민 모두가 소나무에 약간의 이상조짐만 보여도 군에 신고하는 등 신경이 곤두서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영덕군도 총력 대응에 나섰다. 지난 2일 지품면 삼화ᆞ오천ᆞ신애리 3개 지역을 소나무류 반출금지구역으로 추가 지정하는 등 올 들어 3차례나 금지구역을 확대했다. 금지구역은 전체 삼림(5만9,391㏊)의 90%인 85개리 5만3,305㏊에 이른다. 김정두 영덕군 산림보호팀장은 “2009년 재선충 상륙 후 15년이나 싸웠지만 되레 늘고 있다”며 “영덕이 무너지면 다 뚫린다는 각오로 재선충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2020년 영덕에서 10㎞가량 북쪽 후포면에 재선충이 발생, 비상이 걸린 적도 있다.
경북도 등에 따르면 2022년 1,182그루이던 영덕 지역 감염목은 지난해 1만1,035그루로 1년 사이 10배로 늘었고, 올해도 6,035그루나 된다. 워낙 갑작스레 증가해 지난해는 절반가량, 올해도 1,500그루를 미처 제거하지 못했다. 경북도는 올해 영덕지역에 추경과 재해대책비까지 27억7,000만 원을 투입하고 있다.
방제 일선은 재선충예찰방제단이 맡는다. 4개조 15명으로 구성된 영덕재선충예찰방제단은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가 우화(번데기에서 탈피해 성충이 되는 것)하는 4월 중순부터 월동을 준비하는 9, 10월까지 고사목을 찾아내 시료를 채취하고 GPS로 위치를 확인한 뒤 QR코드 밴드를 나무에 두른다. 11월부터 방제팀이 손쉽게 찾아와 벌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허영웅 영덕 재선충예찰방제단장은 “10년 넘게 이 일을 했는데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녹록지만은 않다. 기후변화로 솔수염하늘소 활동 기간이 길어졌지만 잦은 폭우 등으로 방제기간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양봉 채밀시기와 솔수염하늘소 활동 기간이 겹쳐 헬기 등을 이용한 항공방제, 드론 방제도 제한적으로만 이뤄진다. 수간주사도 문화재나 보호수 등 보존가치가 높은 지역에 제한적으로 놓는다.
전문가들은 예산부족이 근본 문제라고 말한다. 한 재선충방제 전문가는 “몇 년 정도 지속적이고 집중적으로 예산을 투입하면 관리가능한 수준으로 낮출 수 있을 텐데 예산 확대가 더디다”고 우려했다.
조현애 경북도 산림자원국장은 “재선충은 조금만 방심하면 폭발적으로 확산하는 경향이 있어 지속적이고 집중적으로 방제할 필요가 있다”며 “추경예산과 산림재해대책비를 영덕지역 등에 집중 투입해 확산저지선을 지키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