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 국회의장이 21일 “진영의 주장에 반대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정치인을 향해 소위 ‘수박’으로 지칭하며 역적이나 배반자로 내몬다”며 “대의민주주의의 큰 위기”라고 지적했다. 김 의장은 29일로 21대 후반기 의장 임기가 마무리된다. 김 의장은 “가장 후회되는 것은 9건의 거부권 행사를 막지 못한 것”이라는 소회를 밝혔다.
김 의장은 이날 국회박물관에서 열린 제22대 국회 초선의원 의정연찬회에서 “정치인 한두 명이 당의 명령에 절대복종하지 않으면 큰 패륜아가 된 것처럼 (된다)”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김 의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일반화를 이루고, 유튜브 시대가 들어오면서 자연스레 정치에 있어서도 팬덤이 형성된다”며 “남북 대립으로 인한 보수-진보 진영정치에, 팬덤정치의 나쁜 폐해까지 결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 의장은 친정인 민주당에 쓴소리를 남겼다. 더불어민주당 강성 지지자들이 비이재명(비명)계 정치인을 일컫는 멸칭인 ‘수박’을 직접 거론하며 “진영논리에 반대되는 사람을 소위 ‘수박’, ‘왕수박’, ‘중간수박’으로 평가하며 작은 정치로 몬다”고 지적한 것이다. 김 의장은 “나라를 위해 큰 담론을 펼칠 수 있는 정치인은 보이지 않고, 정치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점점 왜소해진다”고 했다.
‘당내 민주주의’의 실종에 대한 안타까움도 숨기지 않았다. 여당을 향해서는 “대통령만 보인다. 여권에서 아무도 대통령에게 ‘노(No)’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며 “이번 선거에서도 그런 점을 평가하고자 한 게 아닌가 한다”고 꼬집었다. 야당을 향해서는 “언제부턴가 진보정당의 당내 민주주의가 점점 약해지더니 지금은 찾을 수가 없다”며 “당대표와 당지도부의 지시와 결정만이 있다”고 비판했다.
김 의장은 임기 내 '9번의 대통령 거부권'을 가장 후회되는 일로 꼽았다. 그는 “의장으로 일을 하면서 겪었던 일 중 가장 자괴감이 들었던 것은 9번의 거부권 행사를 막지 못한 것”이라며 “정쟁을 거듭하다 일방적인 실력 행사와 거부권 행사로 종결되는 ‘올 오어 낫싱(All or Nothing)’ 정치”라고 비판했다. 더불어 “지금까지 모든 과정에서 ‘허공에다 주먹질’을 하고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게 됐고, 정치 불신의 근본적인 원인이 됐다”고도 지적했다.
김 의장은 “의회정치를 오래 한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중 거부권 행사를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다”며 “여당 일각에서는 웬만하면 거부권 행사를 해야 한다며 권한으로 생각하는데, 헌법적 권한을 포기하겠다는 것을 국민에게 공개하는 셈”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