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불법 이민자 신속 추방 및 회원국의 이주민 분담 수용을 골자로 하는 신(新)이민·망명 협정(이하 협정)을 승인하자마자, 절반 이상의 회원국이 '더 강력한 조치'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주민 해상 추적·감시를 강화하고 추방할 장소를 확보해 이주민의 유럽 유입 및 체류 가능성을 차단하자는 것이다.
16일(현지시간) 유럽 전문 언론 유로뉴스, 독일 디벨트 등에 따르면 EU 27개 회원국 중 15개국은 이날 EU 행정부인 집행위원회에 "유럽으로의 불법 이주를 막기 위한 새로운 방법과 해결책을 제안해 달라"는 내용의 서한을 전달했다. EU 27개국으로 구성된 이사회가 2026년부터 시행될 이민 관련 10개 법안에 최종 승인한 지 이틀 만이다. 15개국에는 아프리카, 중동 등에서의 난민 유입이 많은 이탈리아, 그리스 등이 포함됐다.
4쪽 분량의 서한은 '해상에서 이주민을 탐지하고 차단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를 담고 있다. EU 협정은 '망명 심사 절차를 간소화해 불법 이민자는 즉각 본국으로 송환한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민자가 유럽에 발을 들이기 전부터 해결책을 찾자는 것이다. 15개국은 시리아에서 난민이 대거 유입됐던 2016년 EU가 튀르키예에 난민 이동을 제한해 달라고 요구하며 그 대가로 자금을 지원했던 것과 같은 협력 모델이 필요하다고도 주장했다.
아울러 15개국은 '이주민을 추방할 수 있는 제3국을 마련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이탈리아가 EU 비회원국인 알바니아와 별도 계약을 맺고 망명 심사 기간 중 이주민을 알바니아 내 수용소에 체류하도록 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어디가 안전한가'에 대한 정의도 명확히 해 법적 실효성을 살려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15개국은 "불규칙한 이주 움직임, 유럽으로의 위험한 여행을 조장하는 구조를 깨기 위해서는 보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며 이른바 '인신매매 비즈니스'에 대한 엄격한 규칙을 마련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다수의 회원국이 '더 강력한 조치'를 촉구하고 나선 건 다음 달 6~8일 치러지는 유럽의회 선거 이후 EU 이민 정책이 더 강경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네덜란드 극우 정당인 자유당이 주도하는 새 연립정부는 이미 EU의 이민 정책에 대해 거부권 사용을 벼르며 EU를 압박 중이다. 서한 발송은 극우 정당이 반이민 정서를 자극해 선거에서 이익을 취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정치적 행위라는 분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