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쓰다 말고 정치는 왜 했노? / 세상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 그래, 세상은 좀 바꾸었나? / 마당만 좀 쓸다 온 것 같습니다”
시인이자 정치인 도종환은 이런 문답이 담긴 자신의 시 ‘심고’를 그의 인생에서 분리할 수 없는 문학과 정치라는 화두에 대한 대답으로 내놨다. 14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시집 ‘정오에서 가장 먼 시간’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라는 고민에 있어서는 정치인과 시인이라는 ‘세속과 구도의 길’이 같다고 내내 강조했다.
올해로 등단 40주년인 도 시인이 2012년 정치인으로 변신한 후 시집을 낸 건 ‘사월 바다’(2016)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이번 시집에는 3선 국회의원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을 지내며 자신에게 끊임없이 던졌던 “너는 왜 거기에 있는가”라는 질문이 오롯이 담겼다. 여기에서 길어올린 시어들인 만큼 현실 정치와 맞닿아있다. 지난해 문재인 정부 인사들이 참여하는 정책 포럼의 이름으로 그가 제안했던 ‘사의재’와 동명의 시도 실렸다. 사의재는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이 전남 강진에 유배됐을 때 기거한 주막집. 도 시인은 정약용의 입을 빌려 “권력을 지키지 못한 죄가 크다”고 읊조린다.
도 시인은 21대 국회의원 임기를 보름 정도 남겨뒀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시집 출간이 지난 12년간의 의정 활동을 마무리하는 시기와 겹쳤다. “시인의 정체성은 잃지 않고 주어진 역할을 하려고 애썼다”는 그는 이번 시집 역시 시인의 할 일을 위해 펴냈다고 말했다. “정오라는 균형의 시간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어둡고 거칠고 황폐해진 죽음의 시간에 우리는 살고 있다”고 한 그는 “시인은 이 어두운 시간 속에서도 고요와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지 않으면 성찰 없는 용기와 절제 없는 언어, 영혼 없는 정치, 영성 없는 진보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권력의 한복판에 매였던 몸은 가벼워졌지만, 마음은 무겁다. 도 시인은 야당(더불어민주당)이 정권을 잡을 수 있었던 기회를 분열로 날린 역사를 “반복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더 많이 설득하고 통합하고 화합하지 못한 채 의회의 일을 그만두고 나오게 됐다”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래도 바깥으로 나온 것이 / 꽃잎이나 나나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시 ‘바깥’)라며 앞으로 후배 문인이 정계 입문을 고민한다면 등을 밀어주겠다고도 했다. 그는 “문화예술을 위해 일하려는 이들의 정계 진출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도 시인은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그는 “2012년 국회에 처음으로 등원할 때 ‘시인 도종환은 죽었다’는 의미로 근조 리본이 달린 화분이 왔다. 의원실에 두고 가꾼 이 화분을 가지고 나와 집에 두려고 한다”며 “앞으로도 ‘나는 죽었는가’를 늘 물으며 거기에서 뭘 했는지를 쓰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