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 전기차를 견제하기 위해 '커넥티드카'를 규제하려고 하자 한국 정부와 업계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자칫 조 바이든 정부가 중국산 흑연에 대한 규제를 내세우자 한국 배터리·전기차 업계가 속앓이를 했던 '흑연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6일(현지시간) 미국 관보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4월 30일 미국 상무부에 의견서를 제출하고 "한국 자동차 업계는 커넥티드카 공급망 조사의 넓은 범위 잠재적 규제 대상의 범위를 둘러싼 불확실성 시행 시기가 모두 업계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우려를 전했다. 커넥티드카는 무선 네트워크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내비게이션, 자율주행, 운전자 보조 시스템 등의 기능을 제공하는 자동차를 말한다.
앞서 바이든 미 대통령은 2월 29일 "커넥티드카에 중국 등 우려 국가의 기술을 쓸 경우 차량 해킹이나 데이터 유출 위험이 있다"며 상무부에 조사를 지시했다. 이에 상무부는 3월 우려 국가의 소유, 통제, 관할에 있거나 지시받는 커넥티드카에 필수적인 '정보통신 기술 및 서비스'(ICTS)를 설계, 개발, 제조 또는 공급하는 기업과는 특정 ICTS 거래를 금지하는 규칙을 제안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려 국가는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 쿠바, 베네수엘라 등 6개국으로 이 가운데 미국에 자동차를 수출할 능력이 있는 국가는 중국뿐이다. 바이든 대통령도 조사를 지시할 때 중국을 겨냥한 조치임을 분명히 했다.
한국 정부는 의견서에서 안보 위험에 대응하고자 하는 조사 취지를 이해한다면서도 "커넥티드카의 정의와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 앞으로 더 세밀한 정의를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현대차그룹과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도 비슷한 의견을 제출했다. 이들은 "커넥티드카에는 배선과 볼트 등 안보와 무관한 다양한 부품이 들어간다"며 "단기간에 커넥티드카 공급망을 조정할 수 없고 기존 공급망에 갑작스러운 차질이 생길 경우 의도하지 않은 차량 안전 문제가 생기거나 차량 생산 비용이 증가할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뿐만 아니라 미국 자동차업체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이 포함된 미국자동차혁신연합(AAI)과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 등도 같은 뜻을 미 정부에 제출했다. 이들은 이미 구축된 공급망을 갑작스럽게 바꾸면 산업 경쟁력이 약화할 위험이 있어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상무부가 조사의 초점을 개별 부품이 아닌 ICTS 시스템에 맞출 것을 건의했다.
자동차 업계는 이번 조치가 제2의 흑연 사태가 될까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미국 정부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세부 규정을 발표하면서 외국 우려 기업(FEOC)에서 배터리 소재를 공급받은 경우 보조금을 받을 수 없다고 규정했다. 그러자 국내외 전기차·배터리 업계에서는 사실상 중국산 소재를 단기간에 완전 배제하기 어렵고 추적도 어려운 만큼 유예기간을 둬야 한다는 의견서를 미국 정부에 제출했다. 결국 미 재무부는 4일(현지시간) 배터리 소재인 흑연의 원산지를 2년 동안 문제 삼지 않겠다고 발표하면서 업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상무부가 커넥티드카 기술의 범위를 어디까지 규정할지 가늠할 수 없어 대응이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