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도 기억력이 있어. 붓을 세우면 잊었던 글자들을 손이 기억해 단숨에 써 내려가지. 바로 그게 초서를 쓰는 ‘손맛’이야”
2일 출간된 한자 초서(草書) 글씨 교본인 ‘초서애송한시(청자출판사 발행)’ 저자 이규삼(84)씨가 들려준 초서 예찬론이다. 한국인이 애송하는 한시 82수(오언절구 32수, 칠언절구 50수)를 초서로 담았다. 총글자수는 2,040자로 모두 이씨가 직접 한 자 한 자 붓글씨로 쓴 것이다. 한시에는 그가 새롭게 풀이한 해설도 곁들였다. 행서(行書) 글씨 교본(행서애송한시)도 함께 나왔다.
초서는 한자를 가장 흘려 쓴 서체이다. 필획의 생략이 많고 쓰는 사람의 개성에 따라 변화도 심하다. 그만큼 글씨를 읽기 어렵고, 서예로 익히기는 더더욱 쉽지 않다. 충북 영동군노인복지관에서 서예 강사로 활동 중인 이씨는 이런 초서를 수강생에게 쉽게 전수할 방법을 궁리하다 교본을 만들게 됐다.
“초서 교육생에게는 보고 따라 쓰는 ‘체본’을 하나하나 써줘야 해요. 교육생 혼자 쓰다가 어려운 글자가 나오면 그때마다 옥편에서 찾아 글자를 확대해봐야 하고요. 이런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손수 교본을 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이씨는 독학으로 서예 실력을 쌓은 인물이다. 어려서 영재 소리를 들은 그는 초등학교 졸업 후 당시 충청도 최고 명문인 대전중학교에 입학했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1년도 못 다니고 학업을 포기해야 했다. 배움에 목말라하던 그는 마침 고향 인근에 문을 연 서당에 갔다가 한문과 서예에 눈을 떴다.
이후 생업으로 목수, 이발사를 하는 중에도 틈만 나면 한문 고서를 읽고 붓글씨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아내 박청자(84)씨는 “일을 하다가도 짬만 나면 붓에 물을 찍어서 땅바닥에 글씨를 수없이 썼던 사람”이라고 전했다.
이씨는 영동군 심천면에서 운영하던 이발소를 접은 60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한학과 서예 공부에 뛰어들었다. 각종 고문서와 비문 연구는 물론이고 향토사 연구도 시작했다. 실력이 알려지면서 지역에서는 고문헌 해석이나 현판·비석 글쓰기를 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현재 영동군에는 영동향교 입구 비석 등 그의 글씨가 새겨진 기념물이나 이정표를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다. 금석이나 기물 등에 새긴 이씨의 명문(銘文)도 200편이 넘는다.
이번 서예 교본 출간에는 셋째 딸 선형(54)씨의 응원이 큰 힘이 됐다. 아버지가 수강생들을 위해 종이 한 장에 한 자씩 정성스럽게 써 가는 모습을 지켜본 선형씨는 책 출판을 앞장서서 도왔다.
“교육용 ‘체본’이 그냥 낱장으로 이용되다가 휴지통으로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졌어요. ‘재야의 고수’인 아버지의 명필을 자료로 남기겠다는 일념으로 글자 원본을 차곡차곡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선형씨를 비롯한 자녀들은 책 출간을 축하하기 위해 4일 영동군 영동읍 신흥갤러리에서 조촐한 출판기념회를 연다. 8일까지 닷새간 여는 기념 전시회는 부부전시회로 선보일 참이다. 동갑내기 이씨 부부의 서예 작품을 한데 모은 특별전이다. 아내 박씨는 이씨로부터 서예를 사사했다. 박씨는 2020년 봄 폐암 말기로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으나 기적적으로 병마를 이겨낸 뒤 남편과 함께 작품을 만들고 교본 편집 작업도 도왔다. 선형씨는 “62년을 동고동락한 부모님이 가정의 달에 부부전시회를 열어 더 의미가 깊은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힘든 생활 속에서도 붓을 잡고 있어서 즐겁게 살 수 있었다”는 이씨는 “건강이 허락한다면 앞으로 동양화에 쓰는 시문과 화제(畵題)를 책으로 정리해보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