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케팅' 유행 만든 이 사람..."우리 가족도 달빛기행, 별빛야행 못 봤어요"

입력
2024.05.0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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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우 한국문화재재단 궁능사업실장 인터뷰

"저희 가족도 달빛기행과 별빛야행 같은 궁궐 프로그램을 아직 가보지 못했어요. 제 동료들도 '궁케팅'을 해야 하는데,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지 뭐예요."

'궁궐'과 '티케팅'을 합친 '궁케팅'은 최근 치솟는 궁궐의 인기를 보여주는 신조어다. 경복궁, 창덕궁 등 조선시대 궁궐에서 열리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벌어지는 치열한 예약 경쟁을 뜻한다. 지난 3월과 4월 온라인 예매 당시 동시접속자가 12만~22만 명에 달했고 10초도 되지 않아 전체 매진됐다.

박준우(43) 한국문화재재단 궁능사업실장은 궁케팅 돌풍을 일으킨 궁궐 활용 프로그램의 총괄 책임자다. 민간 영역의 기획자나 마케터 출신이 아닌, 공채 입사 후 17년간 한길만 걸어온 그의 손에서 2016년 '경복궁 별빛야행'이 탄생했고, '창덕궁 달빛기행' '밤의 석조전' 등 프로그램이 완성됐다. 최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만난 그는 "궁케팅이라는 말을 처음 알게 됐을 때 무척 기뻤다"면서도 "궁을 즐길 더 많은 기회를 드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밤의 고즈넉한 정취 즐기러 궁궐로 오세요"

서울 시내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 궁궐은 다섯 곳이다. 한국문화재재단(이하 재단)은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가 관리하는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등 4대 궁궐(서울시 관할 경희궁 제외)의 활용 프로그램을 2010년대 이후 꾸준히 만들어 왔다. '별빛야행(경복궁)' '달빛기행(창덕궁)' '밤의 석조전(덕수궁)' '생과방(경복궁)' '물빛연화(창경궁)' 등 궁궐 고유의 스토리에 맞춰 특화된 야간 개장 코스와 궁중 음식 체험 활동 등을 개발했다.

"2012년 달빛기행을 담당했을 때는 관람객 30~40명이 한꺼번에 뭉쳐 다니는 형태였어요. 밤에 궁을 찾는 이유는 고즈넉함을 느끼기 위함일 텐데 낮에 관람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 아쉬웠죠. 그 때부터 조를 나눠 소규모로 해설을 진행하고 은은한 조명을 달아 늦은 시각 궁궐의 정취를 잘 느낄 수 있도록 정비했어요."

"왕과 왕비가 먹었던 수라상, 궁궐에서 맛볼 수 있죠"

'달빛기행' 관람객(누적 약 6만9,000명)들이 밝게 웃으며 돌아가는 걸 보고 궁궐 활용 프로그램의 가능성을 발견한 박 실장은 궁중 음식 체험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2016년 시작된 경복궁 별빛야행은 소주방(경복궁에서 왕의 수라를 마련하던 부엌)의 역사적 기능에 착안한 야간 기행이다. 누적 체험객이 1만8,000명이 넘는다. 왕과 왕비에게만 올리던 수라상을 현대식으로 해석한 '도슭수라상'을 맛보고 약 한 시간 동안 궁궐 북측권역을 역사 해설을 들으며 거닐 수 있다. 전통문화에서 '힙한' 감성을 찾고 즐기는 젊은 세대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왕과 왕비의 후식과 별식을 준비하던 공간인 '생과방'에서 진행되는 다과 체험도 인기다. 생과방 프로그램은 조선왕조실록의 내용을 토대로 왕들이 먹었던 대추인절미병, 금귤정과 등 궁중병과와 사미다음, 오미자다 등 궁중약차를 즐길 수 있는 행사다.

문화유산의 활용과 보존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박 실장의 과제. 화기 사용이 엄격하게 금지된 궁궐에서 음식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 3㎞ 떨어진 재단 산하 '한국의집'에서 음식을 공수하는 이유다.


"다음은 조선시대 왕릉 야간 개방 프로그램"

"처음 재단에 입사했을 때에는 궁궐이 이렇게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곳인지 몰랐어요. 업무 때문에 궁궐을 찾다보니 어느새 매력에 푹 빠져버렸죠. 문화유산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과 함께 살아 숨쉬는 곳이 됐으면 좋겠어요. 다음은 왕릉을 활용한 프로그램을 고민하고 있어요. 조선 왕릉은 총 40기가 있는데 낮에만 개방해요. '왕릉 야간 개방 프로그램', 어떨까요?"





이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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