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엔저(달러 대비 일본 엔화 약세)'는 한국 경제에도 부담이다. 원화 가치는 엔화와 비례하는 경향이 있는 데다, 자동차 등 한국 주요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어서다.
29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장보다 1.7원 오른 1,377원으로 장을 마쳤다. 이날 원화 가치를 좌우한 것은 엔화였다. 엔화가 달러당 160엔을 돌파한 이날 오전 원·달러 환율은 7.6원까지 상승폭을 넓혔으나, 이후 엔저가 급격히 진정되면서 원화도 보합 수준으로 되돌림했다.
엔화 약세는 겨우 진정 국면에 들어선 원·달러 환율에도 부담이다. 국제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원화, 엔화, 중국 위안화를 각각을 대체할 수 있는 '프록시(proxy) 통화'로 여겨, 가격이 동행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 외환시장의 금리 민감도가 높다"(외환시장 관계자)는 점도 우려스럽다. 일본은행의 통화완화정책과 더불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지속이 펀더멘털(기초체력) 대비 엔화 가치를 과하게 떨어뜨렸다는 해석이 많다. 연준 정책에 따라 원화의 가파른 절하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다만 당장은 원·달러 환율이 1,400원에 재진입할 가능성은 낮다는 의견이다. 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160엔 이후 엔·달러 환율이 급락한 것을 보면 1차 저항선은 160엔으로 보인다"며 "추가 오버 슈팅(일시적으로 폭등 또는 폭락하는 상태)이 없다면, 원화가 달러 대비 급락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봤다.
문 연구원은 "원·엔 환율의 경우 100엔당 800원대 후반에서 900원대로 원화 대비 엔화 가치 절하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한국 무역수지 약화 요인이다. 주요 제조업종의 수출 대상 상위 10개국 중 5~7개국이 겹칠 정도로 한국과 일본의 수출 경합도는 높다. 이 때문에 엔저는 일본 대비 한국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려 "자동차, 철강 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지난해 8월 나이스신용평가) 수밖에 없다. 또한 일본 여행 증가는 여행수지 적자폭을 키울 수 있다.
엔저가 통화정책 측면에서도 고민거리라는 견해도 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본과) 환율이 이렇게 많이 벌어지면 금리를 인하해서 (일본을) 따라가야 될지, 아니면 물가 때문에 그냥 계속 있어야 될지를 따지는 고민이 하나 더 늘어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다만 엔저 때문에 한국은행이 금리인하를 선택할 가능성은 낮다고 덧붙였다. 그는 "1분기 미국 성장률이 낮게 나온 이유 중 하나가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무역수지 적자"라며 "하반기 대선 국면이 되면, 미국은 무역 역조(수입액이 수출액보다 많은 상태)에 대해 한·중·일을 압박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 반응을 감안하면 한국이 가격 경쟁력 강화(금리인하를 통한 원화 절하)를 택할 가능성은 낮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