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신임 비서실장에 5선의 정진석 의원을 기용한 건 '소통'과 '정무'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카드로 볼 수 있다. 야당과 협치에 속도를 내고, 국정운영에 직언을 해줄 참모가 절실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경제·산업 분야 전문가인 김대기·이관섭 전 비서실장을 통해 윤 대통령 임기 초반 자유 경제 정책 기조를 앞세웠다면, 이제는 총선에서 확인된 불통 이미지를 상쇄할 ‘정치인’ 비서실장이 필요하다는 요구에 부응할 때라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정 비서실장은 대통령실에서 쓴소리를 마다 않는 '레드팀'의 수장으로서 민심의 요구를 정확히 전달하고 야당과의 원만한 가교 역할을 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았다.
정 비서실장은 이날 윤 대통령의 인사 발표에 이어 “여소야대 정국 상황이 염려되고 난맥이 예상된다”며 “어려운 시점에서 윤석열 정부를 돕고 윤 대통령을 돕는 것이 저의 책임이라 느낀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더 소통하고 통섭하고 통합의 정치를 이끄는 데 미력이나마 보좌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정 비서실장은 후보군으로 거론된 다른 정치인들에 비하면 계파 색이 옅고 야당과 상대적으로 각을 세우지 않은 것으로 평가받았다. 여당의 현역 최다선 의원이라는 점도 이번 인선에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낼 당시 계파 갈등이 심했던 여당의 친이(명박)계, 친박(근혜)계 사이에서도 소통에 큰 무리가 없었다. 충남 공주가 고향이고 공주·부여·청양을 지역구로 둔 그는 당내 충청권 의원들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 윤 대통령은 정 비서실장이 정계 입문에 앞서 15년간 한국일보 기자로 근무한 이력을 직접 언급하며 언론 소통의 창구 역할도 부여했다.
정 비서실장 앞에 놓인 난제는 한둘이 아니다. 가장 시급한 건 대통령실에서 윤 대통령에게 고언을 할 참모가 없다는 것이다. 총선 전에 악화하는 여론을 감지하지 못했고, 참패 이후에도 국민 눈높이와 다른 발언이 국무회의로 생중계됐지만 참모들은 속수무책이었다. 그 결과 윤 대통령 지지율은 추락해 국정 동력이 떨어진 상태다.
이에 대해 여권에선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사퇴 이후 정치권에 진출할 당시 친구이자 정치 선배로서 여러 길잡이 역할을 했던 점을 눈여겨보고 있다. 한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대선 주자로 부상할 때 조언을 해주는 가까운 사이였지만 '핵관(핵심관계자)'으로 분류되는 건 경계했다”며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에는 정 비서실장의 직언을 윤 대통령이 부담스러워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고 전했다.
정 비서실장은 국민 눈높이를 앞세우며 이전 참모들과는 다른 역할을 약속했다. 그는 브리핑에서 삼봉 정도전의 '백성을 지모로써 속일 순 없고 힘으로 억누를 수는 더더욱 없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600년 전 왕조 시절에도 국민을 바라보는 눈높이가 그랬는데 지금은 공화국 아니냐”라며 “국민의 눈높이에서 대통령께 객관적으로 바라보도록 말씀드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어수선한 대통령실을 재정비하는 것도 미룰 수 없는 숙제다. 최근 대통령실은 비서실장-홍보수석의 공식 라인이 밝힌 입장과 달리 일부 참모들이 ‘박영선 총리-양정철 비서실장’이 사실인 양 언론에 하마평을 흘리면서 곤욕을 치렀다. 이 부분부터 속히 바로잡아야 한다는 요구가 비등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