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 다음 날인 11일 후보자 현수막 철거가 시작됐다. 이날 오후 2시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한 사거리에서 현수막을 철거하던 분당구청 관계자들은 "오전 10시쯤부터 거리를 돌며 수십 장의 현수막을 뗐다"며 "폐현수막은 일단 구청으로 가져가 처분한다"고 했다. 홍보 현수막을 내린 자리엔 곧바로 결과 승복 현수막이 올라갈 예정이다.
선거 때마다 전국에서 쏟아지는 현수막 공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가 재활용을 장려하고 있지만 플라스틱으로 분류되는 현수막은 대부분 소각되거나 매립된다.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면서 현수막 효용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8~2022년까지 5년간 선거철 폐현수막 발생량은 1만3,985톤. 지난 2020년 21대 총선 당시 1,739톤이 발생했고, 2022년 대선 때는 1,111톤, 2022년 지선 때는 1,557톤의 폐현수막이 배출됐다. 올해는 옥외광고물법 개정으로 현수막 단속이 강화돼 배출량이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번 22대 총선 이후 수거되는 현수막은 260만 장 이상으로 추정된다.
선거용 현수막은 증가하고 있다. 2018년 공직선거법 개정 후 선거구 읍면동마다 게시할 수 있는 현수막이 1개에서 2개로 늘었다. 2022년 12월에는 정당 현수막을 설치할 때 신고 절차와 장소 제한을 두지 않는 내용의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현수막이 난립했다. 지난해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에 따르면 법 시행 전 3개월간 6,415건이던 정당 현수막 관련 민원은 법 시행 후 3개월간 1만4,197건으로 2배 넘게 폭발했다.
이에 올해 1월부터 정당 현수막 개수와 설치 장소 등 제한을 강화하는 옥외광고물법 공포안과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됐다. 하지만 여전히 현수막은 정당별로 읍면동별 2개까지 게시할 수 있다. 선거사무소가 있는 건물엔 크기와 개수 제한 없이 현수막을 걸 수 있어 초대형 현수막도 쉽게 볼 수 있다.
전남 목포의 한 국회의원 후보는 이번 총선 과정에서 자신의 사무소 건물에 길이 100m, 높이 10m의 국내 최대 규모 현수막을 내걸었다. 서울 은평갑에 출마한 한 후보도 15층 아파트 7개 층을 뒤덮는 크기의 대형 현수막을 펼쳤다. 기존 공직선거관리규칙엔 선거사무소의 현수막을 제한하는 규정이 있었지만 2005년 삭제됐다.
한번 만든 현수막을 오래 쓰는 것도 아니다. 총선을 두 달 앞두고 설치되는 현수막은 선거가 끝나면 대부분 소각장으로 간다. 21대 총선과 지난 대선의 현수막 재활용률은 모두 25%에도 미치지 못했다. 환경에도 유해하다. 주성분이 플라스틱 합성섬유(폴리에스테르)인 현수막은 매립해도 썩지 않고 태우면 유해물질이 나온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에 따르면 10㎡ 크기 현수막 1장당 온실가스 6.28㎏CO₂e(이산화탄소 환산량)가 발생한다. 단순 면적 차이로 환산하면 위에 언급한 목포 출마 후보의 현수막 1장으로만 628㎏CO₂e가 나온다. 이는 승용차 1대가 약 4,400km 이상 달려야 발생하는 온실가스 양이다. 21대 총선 기간 제작된 현수막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총 192.2tCO₂e , 소나무 약 2만1,100그루가 1년간 흡수해야 하는 양이다.
폐현수막 처리에 정부도 고심하고 있다. 올해 환경부와 행정안전부는 지방자치단체에 총 15억 원을 지원해 폐현수막 재활용 및 친환경 현수막 제작을 유도하기로 했다. 지자체는 폐현수막으로 우산, 장바구니 등 생활소품을 제작해 주민에게 배포했다. 현수막 재활용을 잘한 기관을 선정하는 '폐현수막 자원순환문화 조성 경진대회'도 개최해 9월 표창할 계획이다.
민간 분야에서도 여러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올해 총선을 맞아 2030 청년 광고인 6명은 폐현수막을 업사이클해 재킷으로 재탄생시키는 '보트 포 어스(vote for earth, us)' 프로젝트를 했다. 이들은 각 정당의 폐현수막으로 만든 재킷을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혜림 국민의힘 영입 인재, 장혜영 녹색정의당 의원에게 전달했다. 다만 재킷이 선거운동에 전면 도입되진 못했다.
제작과 처리에 막대한 비용이 드는 선거 현수막 효용도 높지 않다. 2018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시장조사기관 마크로밀엠브레인에 의뢰한 '지방선거 캠페인 홍보 효과 조사'에 따르면 홍보활동을 접하는 경로는 TV가 86.0%로 가장 높고, 옥외광고(현수막 등)는 76.2%였다. 하지만 매체별 영향력 평가에서 현수막 등 옥외광고는 TV, 신문, 온라인 홈페이지 등과 비교해 가장 도움이 되지 않는 매체로 평가됐다.
지난해 인천시가 시민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시정·소통분야 시민만족도 조사'에선 응답자의 55.9%가 정당 현수막으로 불편을 느꼈다고 답했다. 이 중 '현수막이 정치혐오를 조장한다'는 응답이 48.6%였고, '시민의 생활환경과 안전을 저해한다'는 응답도 40.8%에 달했다.
환경단체들은 선거 홍보 방식 전환을 얘기한다. 23년간 관악산과 까치산 일대 환경 정화 운동을 해온 박창희 서울환경지킴이 대표는 "누구나 재활용보다 쓰레기 자체를 줄이는 게 모든 면에서 효율적이란 걸 안다"며 "네거티브 공세 위주의 현수막이 선거운동에 필수는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김미화 자원순환사회연대 이사장은 "이미 미국, 독일 등의 국가에선 거리 현수막과 벽보를 거의 쓰지 않고도 원활하게 선거를 치른다"며 "스마트폰 보급률이 100%에 가까운 우리나라가 현수막을 고집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온라인 공보물 접근이 어려운 디지털 취약계층을 위해 현수막이나 종이 공보물을 아예 없앨 수는 없지만, 단계적 축소는 충분히 가능하다. 허승은 녹색연합 녹색사회팀장은 "1, 2줄짜리 현수막은 애초에 정보 전달 효과가 거의 없어 활용하지 않아도 선거에 문제가 없을 것 같다"며 "단 종이 공보물은 필요로 하는 계층이 있으니, 먼저 신청자들에 한해 (종이 공보물을) 보내지 않는 방법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