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 행세' 4억 가로챈 경인방송 회장... 범행 13년만에 재판행

입력
2024.04.09 18:52
하도급 공사 빌미로 피해자 속여
신분 위장해 버텼지만 결국 발각

아파트 하도급 공사를 수주해 주겠다는 구실로 수억 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 권영만 전 경인방송 회장이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범행 과정에서 중국동포(조선족)인 것처럼 신분을 감춘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부장 조석규)는 9일 사기 혐의를 받는 권 전 회장을 구속 기소했다. 권 전 회장은 2011년 경기 용인시 아파트 하도급 공사 발주와 관련, 피해자들로부터 4억 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권 전 회장이 2011년 9월 "로비자금을 주면 신갈에 있는 주상복합건물 전기통신 공사를 발주해주겠다"며 A씨로부터 5,000만 원을 빼앗고, 같은 해 11월 B씨에게 위조된 분양대행 계약서를 주는 대신 3억5,000만 원을 가로챈 것으로 본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던 법인 명의를 대기업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바꾸고, 법인 회장 행세를 하며 피해자들에게 접근한 것으로 파악됐다. 위조여권을 통해 '조선족 C씨'인 것처럼 행세했다.

권 전 회장은 수사 초기에는 'C씨와 닮은 사람을 착각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검찰이 객관적 증거를 제시하자 범행을 인정했다. 검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C씨 여권에 부착된 사진과 권 전 회장의 주민등록증 사진을 대조하는 감정을 의뢰해 '동일인 가능성이 높다'는 감정 결과를 받았다. 이후 사건 관계인 조사, C씨 명의 금융계좌 추적, 권 전 회장 주거지 압수수색 등을 통해 권 전 회장이 장기간 C씨의 신분으로 위장해 범행을 저지른 사실을 밝혀냈다.

권 전 회장의 다른 범죄 전력도 드러났다. 권 전 회장은 2000년 허위 분양받은 아파트를 담보로 48억 원의 불법 대출을 받아 사기 혐의로 수사를 받자 2001년 호주로 도피했다. 도피 생활 도중 중국으로 건너가 브로커를 통해 구입한 C씨 여권으로 2010년 8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또 사기 범행으로 얻은 돈 대부분을 도박 자금으로 탕진하자, C씨 신분을 이용해 중국으로 도피한 것도 확인됐다. 권 전 회장은 2014년 9월 자신의 신분으로 한국으로 귀국한 뒤 불법대출 사건으로 형사처벌을 받고 건설브로커 등으로 활동하던 도중 지난해 12월 민영 라디오 방송사인 경인방송의 회장으로 취임했다. 권 전 회장은 자신에 대한 수사 소식이 알려지자 3일 회장에서 물러났다.

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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