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지분 확대 악용 우려"에... 자사주 무상 지급 공시 의무화

입력
2024.04.1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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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 대상
재계 "인센티브 수단인데 불합리"

앞으로 공시대상기업집단(자산총액 5조 원 이상 대기업집단) 소속 회사는 총수 일가에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을 지급할 경우 약정 내역을 공시해야 한다. RSU가 총수 일가의 지분을 확대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조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런 내용의 '개정 대규모기업집단 공시 매뉴얼'을 16일 발표했다. 공시 항목에 RSU 등 주식지급거래 약정을 추가한 점이 가장 크게 달라진 부분이다. RSU는 회사가 성과를 거둔 특수관계인에게 현금 대신 지급하는 주식이다. 성과에 대한 보상으로 자사주를 주는 것으로 제3자에게 양도할 수 없고 일정 기간 보유해야 하는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국내 대기업 중에서는 한화그룹이 2020년 최초로 도입했지만,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200억 원 규모의 계열사 RSU를 받은 점이 공개돼 경영권 승계를 위한 편법 수단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공정위는 RSU가 총수 일가의 지배력 확대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김민지 공시점검과장은 "RSU의 본래 취지는 임직원에 대한 성과 보상이지만, 현재 국내 대기업들은 RSU를 현금이나 주식 배분을 용이하게 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며 "RSU가 기업집단 지배구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공시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현행 공시 체제에서는 기업집단별 주식지급거래 약정 내용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총수 일가에 실제 주식이 지급되는 시점에 매도가액만 공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주식지급거래 약정을 한 대기업집단은 △주식 부여일 △약정 유형 △주식 종류·수량 △주요 약정 내용 등을 연 1회 공시해야 한다. 시장에서는 주식지급거래 약정에 의한 총수 일가의 지분 변동 내역, 장래 예상되는 지분 변동 가능성 등의 정보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기업의 공시 부담을 더는 개정도 이뤄졌다. 앞으로는 물류·정보기술(IT) 서비스 거래 현황을 공시할 때는 매입·매출 내역 중 매출 내역만 공시하면 된다. 또 대기업집단 소속 국내 비상장사가 타인을 위한 채무보증 결정 항목을 공시할 때, 채무보증 기간은 공시하지 않아도 된다. 임원의 변동 항목도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공시 대상에서 제외됐다.

재계는 반발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이날 건의서를 내고 "RSU 등 주식 지급은 인력 유치를 위한 인센티브 부여 수단일 뿐 내부거래와는 그 본질이 달라 공시 의무화는 불합리하다"며 "금감원 정기보고서 등에 이미 RSU 관련 사항 기재를 의무화했는데 이중 공시를 하면 부담이 가중된다"고 주장했다.

세종= 조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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