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위험에 장비 멈췄더니 소송"… 유명무실 30년 '작업중지권'

입력
2024.04.02 16:30
[민주노총 작업중지권 현장 증언대회]
1995년부터 근로자 작업중지권 보장했지만
요구 노동자에 불이익 줘도 사업주 처벌 불가
"회사가 나서 보장할 때 노동자도 사용 가능"

"한국타이어 공장에서 작업자 신체가 센서에 감지돼도 타이어 제조용 벨트 드럼이 멈추지 않고 계속 회전하는 문제가 발견됐습니다. 끼임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지회장이 작업중지권을 행사했고, 고용노동청도 설비 문제가 있다고 보고 시정을 지시했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무단 가동 중단으로 손해를 끼쳤다며 노조 측에 9,800만 원 손해배상을 청구하더군요."(현진우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 부지회장)

산재 위험이 큰 급박한 상황에서 노동자가 일을 멈출 권리, '작업중지권'이 법에 보장된 지 30년 가까이 됐지만 여전히 회사의 압박과 노동자 보호 규정 미비 등으로 작업중지권 사용이 유명무실한 상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제조·생산, 옥외·배송, 이동·방문, 감정노동 등 각 분야 노동자들은 2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교육장에서 '작업중지권 요구안 발표 및 현장 증언대회'를 열고 일터에서 작업중지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실태를 밝혔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의 작업중지 의무(제51조)와 별도로 '근로자는 산재가 발생할 급박할 위험이 있는 경우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다'(제52조)며 1995년부터 작업중지권을 보장하고 있다.

문제는 노동자가 작업중지를 요구했을 때 사업주가 해고나 징계 등 불리한 조치를 해도 이를 처벌하는 조항이 없다는 점이다. 현진우 부지회장이 "(위험한 상황에서) 작업을 중지했다고 그에 대해 부당한 대우를 한다면 어느 노동자가 위험을 인지하고 작업중지를 행사할 수 있겠냐"고 비판하는 이유다. 보통 사업장은 일을 멈춘 시간만큼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작업중지에 소극적이다.

달리 말하면 사업장이 적극적으로 노동자에게 작업중지권 사용을 독려하면 중대재해를 예방하는 데 큰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의미다. 전재희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삼성물산, 포스코 등을 '긍정적 사례'로 소개했다. 삼성물산이 2021년 3월부터 작업중지권을 전면 보장하자 하루 평균 70여 건 작업중지권이 행사됐는데 이 중 40%가 작업자 추락, 자재 낙하, 장비 협착 등을 우려한 안전 보완 요구였다고 한다. 전 실장은 "노동자의 신고 상당수가 안전발판 부실, 개구부 덮개 부실 등 30분 이내로 금세 할 수 있는 안전조치였다고 한다"며 "회사가 나서서 보장할 때 노동자 역시 쉽게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상웅 서비스연맹 가전통신노조 부위원장은 "(가전제품 방문점검 여성 노동자가) 고객 성희롱 등 위험 상황에 놓여도 작업중지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것은 (방문) 건수에 따라 수수료(임금)를 받고, 해당 업무를 마치지 못하면 아무런 보상이 없는 체계 때문"이라고도 지적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현 상황은 개별 노동자의 '위험 시 대피권' 수준"이라면서 "실질적인 작동을 위해서는 노동조합 차원의 작업중지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작업중지를 요구한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준 사업주는 처벌할 수 있게끔 법 개정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나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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