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노 매직'이 통했다. 프로배구 남자부 OK금융그룹이 오기노 마사지 감독 부임 직후 창단 이래 첫 KOVO컵 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8년 만에 챔피언결정전(챔프전) 진출의 꿈을 이뤘다. '일본식 수비 배구'를 향해 쏟아지는 의심의 눈초리와 정규리그 3라운드 전패의 위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고집한 결과다.
우리카드와 플레이오프(PO) 1,2차전에서 승리를 거둔 OK금융그룹은 29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대한항공과 챔프전을 치른다. 챔프전은 5전 3선승제로 진행된다.
작년 5월 OK금융그룹의 지휘봉을 잡은 오기노 감독은 남자부 V리그 첫 일본인 감독이다. OK금융그룹이 오기노 감독에게 원한 건 기본기와 수비 조직력이었다. OK금융그룹은 2013~14시즌에 V리그에 첫 발을 들인 뒤 불과 3시즌 만에 챔피언결정전 2연패를 달성하며 '신흥 명문 구단'으로 떠올랐지만 이후 4~7위로 고꾸라지며 좀처럼 실력발휘를 하지 못했다. 구단 측은 부족한 기본기와 수비 조직력을 끌어 올리고, 알알이 흩어진 선수들을 하나의 팀으로 모아줄 감독이 절실했다. 10년 간 이어져온 '김세진-석진욱 체제'를 마감하고 오기노 감독을 택한 이유다.
의구심 키웠던 '수비 배구', 결과로 증명해
오기노 감독은 부임 초부터 '범실 없는 배구' '수비 배구'를 강조했다. 선수들에게 '매 경기 서브 범실 10개 이하, 공격 범실 8개 이하'라는 목표를 정해주기도 했다. 특히 서브에서는 범실을 줄이기 위해 강한 스파이크 서브 대신 약한 플로팅 서브를 주문했다. 강서브로 상대 리시브를 흔들어놓는 데 익숙한 한국 배구에서는 다소 낯선 플레이다. 오기노 감독의 전략이 통할지에 대한 의구심이 적지 않았다. 실제 3라운드 전패 위기를 맞으며 다소 흔들리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정규리그가 끝난 지금 의구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OK금융그룹의 올 시즌 범실은 650개로, 7개 팀 중 가장 적다. 정규리그 1위 대한항공은 822개, 2위 우리카드는 671개를 기록했다. PO2차에서는 범실이 6개에 그쳤다. 이번 시즌 단일 경기 최소 범실이다. 오기노 감독 마저 경기 직후 "선수들이 내가 생각하는 배구를 해줬다"며 뿌듯해했다.
타협 없는 배구... 대체로 온화하지만 실수엔 엄격
오기노 감독의 배구에는 타협이 없다. 선수들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다. 평소에는 대체로 온화하지만, 본인이 원하는 배구를 해내지 못하면 가차없이 비판을 가하고, 될 때까지 훈련에 훈련을 거듭시킨다. 그렇게 해도 안되면 경기에 내보내지 않는다. 주포 레오도 예외는 아니다. 한때 레오가 자신의 코칭에도 불구하고 계속 강스파이크를 때리자 "머리를 쓰지 않는 배구를 하면 벤치에 있을 수도 있다"고 경고한뒤 경기에서 빼버렸다.
PO1차에서 꾸역승을 거뒀을 때도 오기노 감독은 크게 호통쳤다. 그는 "경기에 이겼어도 주의 줄 부분에 대해선 주의를 주고, 반성해야 할 부분에 대해선 반성해야 한다"며 "잘 안됐던 부분, 잘 안됐던 선수들에 대해 얘기했고, 계속 그러면 다음 경기에 출전시키지 않겠다고 강하게 얘기했다"고 말했다. PO2차 후 곽명우는 "감독님의 호통이 도리어 약이 됐다"며 "덕분에 흔들리지 않고 열심히, 침착하게 경기에 임했다"고 말했다.
'원팀' 이룬 OK금융그룹, 남은 건 '챔피언 우승'
오기노 감독은 대한한공과의 챔프전을 앞두고 "1년간 우리가 해왔던 배구, OK금융그룹만의 배구를 보여줄 것"이라며 "최선을 다하면 결과는 따라올 거라 생각한다"는 덤덤한 각오를 밝혔다. 이번 시즌 역대 전적은 대한항공이 4승2패로 앞서 있다.
챔프전에서 대한항공이 이길 경우 V리그 역사상 첫 통합 4연패 기록을 달성하게 된다. 반면 OK금융그룹이 우승할 경우, 8년 만의 챔프전 우승으로 다시 한번 명문 구단으로 발돋움할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