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차 방송인' 하지영 "선배들이 저를 살렸죠" [인터뷰]

입력
2024.03.21 08:00
하지영, 해방컴퍼니 설립하고 새 출발
영화 행사 진행자로 바쁜 스케줄 소화
5년간 연극 무대 오르며 연기 열정 발휘
류승룡·박경림 등 챙겨주는 선배들 언급

영화 행사장을 채우는 경쾌한 목소리, 무대 위에서 긍정의 에너지를 전하는 하지영은 데뷔 21년 차 방송인이다. 지난 2003년 KBS 18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했지만 10년간 연예 프로그램의 리포터로 활약하며 시청자들에 눈도장을 찍었다. 영화 프로그램과 각종 행사 진행, 연기까지 도전하면서 하고 싶은 일들에 거침없이 도전하는 그는 욕심과 열정이 많은 사람이다.

올 초에는 회사도 설립했다. 지난해 여름 이전 소속사와 계약이 만료됐고, 혼자 스케줄을 소화하다가 회사를 차리기로 결심했다. 8월 15일, 확실하게 마음을 정하면서 회사명은 '해방컴퍼니'로 정했다.

최근 본지와 만난 하지영은 "연기와 MC를 같이 하는 회사에 대한 니즈가 있었다. '제대로 하고 싶은 걸 하자' 싶어서 십몇 년 전에 같이 회사에 있던 언니에게 같이 하자고 했다"며 "그동안 혼자 운전하고 다니다가 언니한테 도움을 청한 거다. 현재는 직원이 딱 두 명이다. 단촐하게 시작했다"며 웃었다.

그는 "아무도 내 방향성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다. 나는 내 방향이 정확하다. 그래서 믿을만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NO'가 없더라. 평소에 도움을 청하는 타입이 아니긴 하다"라며 "모든 부분에 다 신경을 써야 하니까 힘든 거도 많지만 고마운 분들의 도움으로 잘 해나가고 있다. 내가 인복이 있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일을 하다 보면 좌충우돌 예기치 못한 상황들도 펼쳐진다. 매니저와 소통이 안돼 현장에서 대리운전 기사를 불러서 스케줄을 함께 다니거나, 스타일리스트가 못 와서 직접 나가서 옷을 사입고 행사에 참석하는 일도 있었다. 완벽주의자 하지영은 평소에도 스타일리스트 대신 직접 의상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 "진행할 때 옷이 나에게 제대로 붙어있어야 마음이 편해요. 그걸 충족하려면 스타일리스트가 힘들어지니까 지금은 여유가 돼서 70%는 제가 준비하고 있어요."

지난해 그는 수많은 영화들의 제작보고회나 VIP 시사회 진행을 맡았다. 수백억 대작을 소개하는 자리이다 보니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했다. 리포터 시절 알고 지냈던 많은 배우들이 현장에서 반가워해줘서 큰 힘을 얻기도 한다. "제가 방송일 시작한 지 21년 차인데 오래 됐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감사하게 생각해요. 배우들이 좋아해주니까 신이 나고요."

특히 하지영에겐 김혜수나 류승룡 등 고마운 배우들이 있다. 그는 류승룡이 '길동무'라면서 "2년 전쯤인가 아침 7시까지 잠 못 자던 기간이 있었다. 그때 난 연극을 한창 하고 있을 때인데 승룡 선배한테 힘들다고 만나달라고 했다. '무빙'을 찍고 계실 때였는데 그 바쁠 때 같이 걸어주셨다. 진선규 오빠도 나왔다. 그렇게 후배들이 요청을 드리는 거다. 걸으면서 상담을 하는데, (류승룡) 오빠는 뭘 사서 손에 한가득 쥐어주신다. 덕분에 우울증도 탈피했다"며 감사를 표했다.

하지영은 선배들을 좋아하고 따른다.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기 때문이다. "저는 선배들이 현실판 영웅들 같아요. 현실에 존재하는 걸 눈으로 보면 세상이 살맛나는 거 같고요. 마음이 따뜻해지죠. 선배들만큼은 아니어도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요."

5년 전 연극을 시작한 그는 지난해 11월 '춘천거기'로 관객들을 만났다. 연극은 인기에 힘입어 열흘 정도 연장 공연을 했다. "처음 연극 시작했을 때 원래의 방송하는 마인드로 하면 안되겠다 싶더라고요. 내 습관을 버리고 연기자의 일상으로 살았어요. 예전에는 예능 프로그램을 많이 보고 모든 프로그램을 섭렵했는데, 연극을 하면서 영화 드라마만 집중해서 봤어요. 보다 넓은 시선이 생겨서 그게 진행에도 더 도움이 되더라고요. 일주일에 50편은 보는 거 같은데, 눈이 안 좋아져서 병원도 다닐 정도였죠. 하하."

오랜 인연을 자랑하는 박경림에게도 특별히 감사한 일이 있었다. "언니가 연극 보러 와서 흰 봉투에 돈다발을 두고 가셨어요. 사람들이 많이 보러 오니까 밥 사주라고 돈다발을 주신 거예요. 조금 넣은 줄 알고 열어봤는데 돈이 너무 많아서 놀랐죠. 언니한테 '저 시집 가요?' 물어볼 정도였어요. 너무 고마웠어요. 공연도 거의 다 보러 왔고 언니랑은 동네 주민이라 산책도 같이 자주 해요."

하지영은 연극을 하면서 많이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돈을 많이 쓰면서 했기 때문에 진행도 더 열심히 했단다. "그래도 당시엔 진짜 즐기면서 한 거 같아요. 부족한 게 많은데 선배들이 많이 기다려주고 좋은 기회를 주고 그랬어요. '선배들이 나를 살렸다'고 엄마한테도 말했죠. 저는 사람을 깊이 오래 만나는데 안 질려하는 성격이거든요. 시절인연도 감사해요. 그 당시 나를 외롭지 않게 해줬고 성장할 수 있게 했으니까요."

긴 시간 좋은 사람들과 뜻깊은 추억들을 쌓아가고 있는 하지영은 이 일을 '천직'으로 느낀다. 그는 연예계에서 확실히 터득한 것이 있다. "열심히 해서 얻은 나의 재능이나 노력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혹독하게 느껴버렸죠. 지금까지 모든 연극과 드라마는 전부 오디션을 통해 참여했어요. 저는 이 일이 천직 같아요. 물론 일을 하다 보면 별로인 사람도 있고 무례한 환경도 있고 모욕적인 상황도 있어요. 그래도 이 판에서 반짝반짝 빛을 내며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불협화음들이 하나로 모이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때가 너무 감동적이에요."


유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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