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금리 있는 세상'으로… '잃어버린 30년' 벗어났다

입력
2024.03.2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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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행, 마이너스 금리 해제
비정상적 금융완화 정책 종료
시장 충격 우려 국채 매입은 유지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정책금리를 인상하며 8년간 이어온 '마이너스 금리 시대'에 마침표를 찍었다. 17년 만의 첫 금리 인상을 통해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30년'이라 불린 장기 디플레이션을 탈출하며 '금리 있는 세계'로 발을 내딛게 됐다.

큰 폭 임금 인상에 "금리 인상 가능" 판단

일본은행은 이날 금융정책결정회의(한국의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 해당)를 열고 -0.1%인 단기 정책금리(무담보 콜금리)를 0~0.1%로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은행이 금리를 올린 건 2007년 2월 이후 17년 만이며, 마이너스 금리를 해제한 건 2016년 2월 이후 8년 만이다.

마이너스 금리는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돈을 맡기면 -0.1%의 단기 정책금리(당좌예금 정책잔고 금리)를 적용하는 제도다. 은행이 돈을 갖고 있으면 손해니 기업에 대출해 경기를 활성화하라는 뜻이다. 디플레이션 탈출과 연 2%의 안정적 물가 상승을 목표로 2013년 제로 금리와 국채 매입 등을 골자로 한 '이차원 금융완화 정책'을 도입했지만, 물가가 좀처럼 오르지 않자 더 파격적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일본은행은 시장 금리가 상승하지 못하도록 유지해 온 '장단기금리조작'도 종료했다. 장단기금리조작은 특정 금리 이상의 국채를 대량으로 매입해 시장 금리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제도다.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지 7개월 뒤인 2016년 9월부터 적용했지만, 채권시장을 왜곡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아울러 상장지수펀드(ETF), 부동투자신탁(REIT) 매입도 중단하기로 했다.

일본은행이 금리 인상을 결정한 건 물가와 임금 상승의 선순환 구조가 갖춰졌다고 판단해서다. 지난해 일본의 소비자물가지수는 3.1% 오르며 1982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임금이 물가 상승을 따라가지 못하며 지난 1월 실질임금은 22개월 연속 감소했다. 그러나 일본 최대 노총인 '렌고(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가 지난 15일 중간 집계한 결과 올해 평균 임금 인상률은 5.28%로 나타났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2%의 물가 상승을) 안정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 대규모 완화 정책은 역할을 다했다"고 설명했다.

일본은행 총재 "아직 2% 물가 상승 완전히 이르지 않아"

일각에선 이번 정책 변화로 지금의 '엔화 약세(엔저)' 바람이 멈추고 엔화 강세(엔고)로 바뀔 것으로 관측한다. 일본이 금리를 인상한 반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RB)는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급격한 '엔고'가 나타날 경우 일본 수출 기업의 채산성이 떨어질 수 있다. 금리 상승으로 인해 막대한 정부부채를 지닌 일본 정부의 이자 부담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일본은행은 금리 상승으로 이 같은 부작용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완화적 금융 정책의 수단이었던 장기 국채 매입은 유지하기로 했다. 결정문에도 "당분간 완화적인 금융환경이 계속된다"고 명기했다. 앞으로 금리를 빠르게 올리지 않을 것이란 약속에 이날 일본 엔화 가치는 달러당 150엔 정도로 떨어졌다. 닛케이255종합주가(닛케이지수)도 4만3.6엔으로 마감하며 종가 기준 4만선을 다시 회복했다.

도쿄= 류호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