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이 어떻게 하면 삶에서 유의미한 음악이 될 수 있을까를 많이 생각해요.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반을 아우르는 오스트리아·독일 음악을 담아 낭만의 절정을 프로그램으로 풀어 보고 싶었어요."
피아니스트 손열음(38)이 낭만주의 음악으로 돌아왔다. 10년 가까이 호흡을 맞춘 불가리아 태생의 바이올리니스트 스베틀린 루세브(48)와 함께 듀오 앨범 '러브 뮤직'을 발매했다. 지난해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8곡 전곡 앨범에 이어 프랑스 명문 음반사 나이브 레이블로 나온 두 번째 앨범. 코리아타임스가 주최하는 25일 서울 롯데콘서트홀 공연 등 네 차례 연주회도 연다. 12일 서울 중구 을지로의 한 갤러리에서 만난 손열음은 "시작은 우연이었다"고 말했다.
"프란츠 왁스만의 '러브 뮤직'이 출발점이었어요. 왁스만이 바그너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사랑의 죽음'을 편곡한 작품의 악보를 스베틀린이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왁스만의 팬이었지만 이 곡을 몰랐던 저는 '꼭 연주해야겠다'고 했고, 스베틀린이 '이거 녹음해야 해'라고 한 거죠."
둘은 바그너의 영향 아래 있는 화려하고 찬란한 후기 낭만주의 음악을 모았다.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의 극음악 '헛소동' 주제의 네 곡(Op.11),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내림마장조(Op.18) 등 후기 낭만주의 곡들이다. 손열음은 "왁스만과 코른골트는 할리우드에서 영화음악을 개척했으니 클래식 음악과 오늘날의 음악을 매개해 준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강조했다.
2015년 첫 듀오 공연 후 꾸준히 함께해 온 둘은 요즘 가장 잘 맞는 실내악 동반자다. 손열음은 "상대 음악가와 밀접하게 소통해야 하는 실내악이 20대 때에 비해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며 "스베틀린과는 느긋한 성격이 잘 맞아 편하게 함께 한다"고 말했다.
손열음은 기획력도 돋보이는 음악가다. 2022년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에서 물러나며 직업 기획자 활동은 쉬고 있지만 여전히 자발적 기획자로 살고 있다. 같은 해 출범한 고잉홈프로젝트를 통해서다.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연주자와 한국과 인연이 깊은 해외 연주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음악 축제로, 올해도 7, 8월 2회씩 공연이 예정돼 있다. "세계 곳곳에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다고 연락해 오는 음악가도 많아서 이 프로젝트가 음악가들의 제2의 고향 또는 허브가 되는 새로운 소망이 생겼어요."
지난 1월 국내 서비스를 시작한 애플뮤직 클래시컬을 통해 선보인 플레이리스트도 손열음의 기획력이 발휘된 결과물이다. '메노 모소(앞부분의 빠르기보다 느리게 연주하라)'라는 제목의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알리시아 데 라로차 등 전설적인 여성 피아니스트들의 이름을 상기시켰다. 그는 "플레이리스트라는 개념이 없던 어린 시절에도 라디오 DJ나 PD가 돼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려주고 싶은 꿈이 있었다"며 '"플레이리스트는 앞으로도 많이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손열음은 요즘 피아노 연주를 부쩍 즐기게 됐다고 했다. "피아노를 다르게 연주하고 더 잘 치고 싶은 마음이 요즘처럼 컸던 때가 있었나 싶어요. 독일로 유학을 떠났을 때를 빼면 피아노 연주보다는 음악을 따라가는 삶이 좋았던 것 같거든요. 제가 이런저런 관심사가 많다고 해도 제 꿈은 언제나 피아노를 더 잘 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