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우정엔 말이 필요 없다...개와 로봇이 펼치는 감동 무언극

입력
2024.03.12 12:30
22면
13일 개봉 애니메이션 '로봇 드림'
뉴욕 배경 개와 반려 로봇 우정 그려
1980년대 풍광 아련... 오스카 애니 후보

도그는 미국 뉴욕에서 홀로 산다. 어느 날 집에서 게임을 하다 외로움을 절감한다. 우연히 TV광고를 보고 충동구매를 한다. 반려 로봇을 주문한 거다. 도그와 로봇은 금세 가까워진다. 어디를 가든 함께한다. 얼굴만 봐도 미소가 흐르고, 손을 맞잡고 거리를 걷는 사이가 됐다.

둘은 교외 해변에 놀러 간다. 쏟아지는 햇볕을 즐기며 물놀이를 한다.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다. 갑작스레 비극이 덮친다. 해변에서 자고 일어났더니 무슨 이유인지 로봇이 움직이질 못 한다. 일은 꼬이고 둘은 강제로 떨어져 지내게 된다.

애니메이션 영화 ‘로봇 드림’은 동화이면서도 우화다. 도그는 호칭대로 개다. 세상은 동물들이 지배하고 있다. 인간은 없다. 시간적 배경은 1980년대. 인간은 없는데 로봇의 외양은 인간을 닮았다. 영화는 개와 로봇을 통해 사랑과 우정의 순수한 본질을 전한다. 동시에 반려 동물(넓게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되돌아보게 한다.

도그와 로봇의 사연은 절절하다. 도그는 로봇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매번 관료제의 벽에 막힌다. 로봇은 도그와의 재회를 갈망하며 꿈을 꾸고는 한다. 그는 꿈속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가볍게 도그를 향해 뛰어가기도 하고, 영화 ‘오즈의 마법사’ 속 공간과 비슷한 곳에서 도그를 마주하기도 한다. 마음은 간절하나 현실은 다르다. 여러 감정이 교차하고, 극적 사건들이 많은데 상영시간 102분 동안 말 한마디 나오지 않는다. 진정한 사랑과 우정에는 말이 필요 없다는 듯이. 관객은 도그와 로봇의 표정과 동작, 주변 풍광만으로도 둘의 심정을 절감한다. 도그와 로봇이 서로에게 그랬듯 관객은 가슴으로 영화와 통한다.

스페인 영화다. 파블로 베르헤르 감독이 연출했다. 영화 속에서 도그와 로봇은 한때 미국 뉴욕 명물이었던 킴스비디오(재미동포 김용만씨가 설립ㆍ운영, 동명 다큐멘터리가 있기도 하다)에서 비디오를 빌려와 함께 본다. 1970~1980년대 인기 있었던 탭 콜라를 홀짝거리기도 한다. 2001년 9ㆍ11테러로 무너져 내린 세계무역센터가 수시로 등장해 향수를 자극한다. 감독의 10년 뉴욕 생활의 추억이 반영된 모습들이다. 소란스러우면서도 역동적이고 따스하면서도 비정하며 교통지옥이면서도 낭만적인 뉴욕은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로봇이 옥탑에서 바라보는 뉴욕 풍경은 그 자체로 ‘그림’이다.

미국 작가 새러 배론의 동명 만화(2007)가 원작이다. 지난해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경쟁 부문인 콩트르 부문 작품상을 받았다. 지난 10일(현지시간) 열린 제96회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 장편애니메이션 부문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13일 개봉, 전체 관람가.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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