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대 설립을 사실상 금지해 온 그리스에 사립대가 들어설 수 있게 됐다. 그리스 의회가 '해외 사립대의 분교 설립을 허용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그리스는 '국가가 고등교육을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헌법에 기반해 지금까지 정부가 24개 대학을 운영∙관리해 왔다.
사립대 설립 허용을 추진해 온 그리스 정부와 여당은 "국가의 교육 독점 시대가 끝났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정부가 무상 교육의 시대를 끝내고 학위 장사를 하려 한다"는 비판 여론도 끊이지 않고 있어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9일(현지시간) 그리스 일간 카티메리니·미국 AP통신 등에 따르면, 전날 저녁 표결에 부쳐진 사립대 허용 법안은 참석 의원 299명 중 159명이 찬성표를 던져 가결됐다. 반대는 129표, 기권은 11표가 각각 나왔다. 지난해 6월 재선에 성공한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가 속한 신민주주의당(300석 중 158석)이 법안 통과를 주도했다.
해당 법안은 △해외 사립대가 비영리 단체 자격으로 그리스에 분교를 설립할 수 있도록 하고 △사립대에서 취득한 학위를 공립대 학위와 동등하게 인정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그간 외국 대학과 연계한 교육 기관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여기에서 취득한 학위는 그리스에서 정식 대학 학사 학위로 인정되지 않았다.
그리스 정부는 대학 교육 문호를 민간에 개방하는 것을 '교육 개혁'이라고 칭했다. 미초타키스 총리는 표결 전 "그리스는 아마도 쿠바와 더불어 고등교육을 국가가 독점하는 마지막 국가"라며 "우리는 북한에도 존재하는 것(사립대)을 설립하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립대를 설립하면 해외에서 공부하는 우수 인재가 그리스로 돌아올 확률이 커지는 데다, 공교육도 '자극'을 받아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스에 분교 유치를 고려하는 해외 사립대는 이미 10곳에 달한다고 정부는 덧붙였다.
그러나 사립대 허용을 경계하는 여론도 여전하다. 시리자 등 야당에서는 민간 자본의 대학 유입이 '교육의 무상 제공'이라는 그리스의 대원칙을 흔드는 것이자 헌법 위배라고 본다.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게 사립대 설립 목적이라면, 차라리 공교육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대학생들의 반발도 상당하다. 지난 1월 교육개혁안 발표 후 9주간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정부 규탄 시위가 이어졌다. 표결 당일 수도 아테네에서 열린 항의 집회에도 1만8,000명(경찰 추산)이 참가했다. 시위에 참여한 이라클리스 마리노풀로스는 "부유한 학생들은 더 낮은 성적으로도 사립대에 입학할 수 있을 텐데, 이는 돈을 내고 학위를 취득하는 것"이라고 AP통신에 말했다.